[광화문에서/홍권희]‘2030 희망한국’을 말할 자격

  • 입력 2006년 8월 27일 2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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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가 2020년까지 연평균 6.3%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산업화 계획을 열흘 전에 내놓았다. 1991년 마하티르 모하맛 당시 총리가 ‘비전 2020’을 발표하면서 30년 계획을 시작해 올해로 절반까지 왔다.

최근의 성장세는 목표에 미달했지만 도이체방크는 2006∼2020년 말레이시아가 연평균 5.4%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0년간 평균 10%씩 성장해 온 중국의 이 기간 전망치(연평균 5.2%)보다 높고, 인도(5.5%)에 육박하는 세계 2위로 점쳤다.

11년 전 부자나라를 향해 뛰는 동남아국가들의 열기를 현장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선 어디를 가나 ‘WAWASAN(비전) 2020’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총리는 “사회 인프라는 최고인데 국민 정신력은 3류”라는 표현을 써 가며 사회 통합과 근면을 강조했다.

말레이시아경제연구소(MIER) 연구원들은 한국을 칭찬하면서도 “2020년경엔 두 나라가 좋은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당시엔 가볍게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30년 목표를 향한 그들의 집념과 추진력이 놀랍다.

그 사이 경제 여건이 많이도 바뀌었다. 중국과 인도가 치고 나왔다. 말레이시아 저임 노동력의 경쟁력은, 우리가 그랬듯, 많이 약해졌다. 현지 언론은 “전통제조업의 경쟁력 우위가 사라져 간다”는 모하멧 아리프 MIER 소장의 우려를 전했다.

그들 역시 정보기술(IT)에 승부를 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세팡공항까지 길이 50km, 너비 15km 지역에는 아시아 IT허브가 들어서고 있다. 최첨단 정보화 도시로 개발하겠다는 ‘말레이시아 슈퍼 코리도(MSC)’ 프로젝트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기업과 기업인을 우대해 ‘투자의 낙원’을 만든다는 자세가 기본이다. 우리와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사뭇 다른 나라, 말레이시아는 우리를 비춰 보는 거울 같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2030년을 언급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2030 희망 한국’ 청사진을 보여 줬다. 그러나 ‘미래의 복지까지 챙긴다’는 칭송은 커녕 반응은 썰렁하기만 했다.

이 자리에서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10년, 20년 뒤 복지국가로 가는 길도 중요하지만 현재 서민경제 민생경제가 어려운데 국민이 얼마나 절실히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현실부터 바로 보라’는 주문이었다. 그는 “‘비전 2030’이 토론의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의미를 축소했다는데, 그 평가가 옳다.

정부는 ‘2030 희망 한국’ 발표를 당초 예정한 지난주에서 이번 주로 연기했다. 여당도 설득하지 못하는 청사진이라면 정부는 나서지 말고 연구소의 연구 결과 정도로 발표하는 게 낫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민간과 정부가 미래의 과제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개념인데 그 취지가 부각되지 못해 아쉽다”고 했지만, 중요한 보고서를 불쑥 들이대는 정부 행태가 더 아쉽다.

선거용이라면 몰라도, 정말로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걱정하는 정부라면 미래 복지의 원동력인 오늘의 성장에 대한 전략부터 내놓아야 정상이다. 장기 목표를 향한 말레이시아의 실천력이 부럽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통령 임기가 짧아 못 한다’는 주장을 펼까 봐 말을 줄여야겠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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