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푼돈 1억?

  • 입력 2006년 8월 2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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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관리 전문가에게 1억 원가량의 현금 운용에 대해 상담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물론 대부분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디서 상담을 받을지는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운이 나쁘면 ‘소액’이라며 면박을 주는 전문가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개인에게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를 프라이빗뱅커(PB)라고 합니다. 최근 자산 관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목받고 있는 직업입니다. PB 고객의 상당수는 보통 10억 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십억 원을 굴리는 사람들만 상담하다 보면 그보다 적은 액수는 ‘만만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최근 자산 관리 상담 사례를 취재하던 중 삼성증권의 한 PB에게 ‘1억 원 정도의 현금을 가진 직장인이 효율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글쎄요. 저는 돈 많은 사람들만 상대해서…, 적은 돈을 관리하는 일은 많이 해 보지 않아서 말씀드리기가….”

‘1억 원은 너무 적어서 관리하기 난감하다’는 사람에게 1억 원 관리법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얼마 후 삼성증권 임원에게 이 PB의 답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는 “워낙 다양한 PB가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PB는 투자자와 함께 큰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역사는 이를 잘 실천한 사례입니다.

메릴린치는 1980년대부터 ‘천천히 부자가 되자(Get rich slowly)’는 슬로건을 앞세워 개인 고객을 집중 공략했습니다. 기업금융(IB) 시장에서 경쟁사에 밀리자 중산층 대상의 자산 관리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운 것입니다.

메릴린치의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고령화와 저금리 시대를 맞아 간접투자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중산층 고객 확보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메릴린치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자산 관리 시장의 선두주자로 도약합니다.

한국의 자산 관리 시장은 이제 겨우 기본 틀을 갖춰 가는 단계에 있습니다. 너무 일찍 콧대가 높아진 일부 PB 때문에 이 시장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전에 시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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