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신욱]‘사법 위기’ 몸으로 느껴진다

  • 입력 2006년 8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한 나라의 건강 지수는 국민의 사법에 대한 신뢰도와 비례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사법을 신뢰한다는 말은 법원과 검찰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해서 사회에 부정과 부패가 발을 붙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수사나 재판 과정이 투명하고 결과가 공정하며 인권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기회가 충분히 보장돼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치적인 민주화와 경제적인 성장이 이루어짐에 따라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시비는 현저히 줄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기회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런 터에 법관과 검사가 법조 브로커 김모 씨에게서 금품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으니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소리가 들리고, 변명할 말을 찾을 수 없는, 실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사법의 위기가 몸으로 느껴진다.

과거에도 법조계 비리가 문제 된 적이 있었다. 의정부 법조 비리, 대전 법조 비리, 거물 브로커 윤모 씨 등이 기억나는데, 변호사가 사건 브로커와 불법 거래를 했다든가 법관이나 검사에게 이른바 명절 떡값이나 전별금 등을 주었다는 것으로서 당시는 부적절한 관행이라는 말로 군색한 변명이라도 해 보았다. 이번 사건은 법관과 검사가 직접 사건 브로커에게서 금품을 받았다는 것이어서 유(類)가 다르다.

법관과 검사가 직무 성격상 사건 브로커는 물론 사건 당사자나 변호사와의 사적인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기본 윤리를 모를 리 없다. 법관의 경우에는 헌법의 근본 이념 중 하나인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다. 사법권 독립의 이념은 법관이 국가 권력이나 외부 세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선입견이나 사사로운 청탁, 정실에도 초연할 것을 요구한다. 이번 사건으로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국민의 사법에 대한 불신 풍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게 확산되어 재판이나 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린다는 점이다. 이는 법조계의 비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불행으로 이어진다. 법치국가에서 사법은 사회의 각종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고, 국가의 법질서를 유지하는 최후의 수단이므로 사법이 불신을 받아 국민이 수사나 재판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현상이 심화된다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마지막 보루가 허물어지는 것이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둘째는, 국민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라는 말을 확실히 믿게 되어 사법 풍토가 더 혼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이 이런 유행어를 믿게 되면 사건 당사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담당 법관이나 검사에게 청탁하려 들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가 발호하고 전관 변호사를 선호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법개혁을 외쳐 왔고, 많은 제도의 개선을 이루었는데도 그 결과가 오늘날의 모습이다. 제도 개선만으로는 진정한 사법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 준다. 제도의 변화에 따른 법조인과 국민의 의식 변화가 따라야 한다.

국회에서 심의 중인 사법개혁안은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 제도, 국민의 재판참여 제도의 도입과 함께 법조 윤리의 확립 방안으로 민간인이 참여하는 중앙법조윤리협의회를 설치해 법조윤리 현황을 상시 감시하고, 공직에서 막 퇴임한 변호사 등에게 수임 자료를 제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또 법조인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강화하는 등의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무너진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이 사법을 불신하는 이유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많은 법조인은 이런 말이 국민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항변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이런 말이 사라지게 하는 데 있다. 그것이 안 되면 어떠한 사법개혁 방안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강신욱 전 대법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