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민단과 총련의 포옹, 그 후

  • 입력 2006년 5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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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수뇌가 얼마 전 극적으로 포옹한 뒤 곧바로 뒷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추진이나 진전 과정이 너무나도 남북 대화와 닮았기 때문이다.

50년 만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하병옥 민단 단장은 2월 단장 선거에서 총련과의 화합을 강조했다. 당선되자 총련 본부로 달려갔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연상케 한다.

그러자 곧바로 민단 지방본부가 반발했다. ‘탈북자지원센터’를 해체하라는 총련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남남 갈등’과 같다.

총련은 어떤가. 한때 20만 명이나 되던 회원은 5만∼6만 명으로 줄어들고, 납치문제에 화가 난 일본 정부의 압박은 점점 옥죄어 오고 있다. 경제난에 핵문제까지 겹쳐 고립무원이 되어가는 북한의 처지와 비슷하다.

방법도 비슷하다. 도움이 아쉬운 총련이 오히려 앉아서 얻어낼 것을 얻어냈다. 앞으로 일이 잘 안 풀리면 총련은 먼저 손을 내민 민단을 압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민단과 총련이 남북 대화의 잘못된 전철까지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엄연히 ‘남의 나라’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눈치를 보아가며 살고 있는 그들이 남북한의 갈등마저 떠안는 것은 가혹하다.

‘교포(僑胞)’라는 말 대신 ‘동포(同胞)’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쯤 된다. 1997년 3월 해외 한인들의 공식 창구로 재외동포재단을 설립하면서부터다. ‘타향이나 타국에서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보다는 ‘같은 핏줄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말이 훨씬 정겹긴 하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인 1994년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은 ‘거류’를 떼어내고 그냥 ‘민단’이 된다. 5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남의 나라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연결된 ‘정신적 젖줄’을 떼고 홀로서기를 선언한 것이다.

총련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더는 총련의 바람막이가 될 수 없고, 총련이 더는 북한의 돈줄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총련이 더 잘 안다.

틀만이 아니다. 민단과 총련의 구성원이 3, 4대까지 내려오며 해마다 1만 명 이상이 일본에 귀화하고 있다. 민단 조사(2001년)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한국 이름을 쓰는 재일동포는 1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일본 이름을 쓰거나 양쪽 이름을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뉴커머(New Comer)’라는 새로운 그룹까지 등장했다. 1980년대 여행자유화조치 이후 일본에 건너와 정착한 사람들이다. 벌써 15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민단이나 총련, 어느 쪽과도 관계가 없다. 이들은 2001년 5월 재일본한국인연합회(한인회)를 만들어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단과 총련의 화해 목적은 같은 핏줄을 가진 ‘동포’로서 이국에서 오순도순 잘살기 위한 것이 돼야 한다. 그 이상 욕심 낼 필요가 없다.

남북한 정부도 민단이나 총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럴 자격도 없다. 그동안 남북한 정부는 50년 이상 일본이라는 낯선 사회에서 질경이처럼 살아온 재일동포와 그 후손들에게 대가를 바랄 만큼의 혜택이나 애정을 베푼 적이 없다. 재일동포가 못난 모국을 짝사랑해 왔을 뿐이다.

민단과 총련이 남북한과 연계된 이벤트성 사업보다 먼저 할 일이 따로 있다. 재일동포사회를 민단-총련-한인회라는 단체나, 남한-북한-일본이라는 국적으로 가르지 말고, ‘재일코리안’이라는 새로운 커뮤니티 개념으로 묶어내는 일이다. 그러면 일본에 귀화한 동포들까지도 모두 ‘코리안’으로 포용할 수 있다. 실현만 되면 ‘코리안’ 파워는 지금보다 배가량인 130만 명으로 늘어난다. 민단과 총련의 포옹이 끝났다. 이젠 ‘재일코리안’의 포옹을 보고 싶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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