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가난 마케팅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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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민학교를 네 군데 다녔어요. 집이 자주 이사를 다녔기 때문이죠. 4학년 때 서대문구 금화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이 시절이 정말로 가난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날마다 아프셨고요. 매일 콩비지를 끓여 먹던 시절이었죠. 이 무렵에 삼양라면이 처음 나왔지요.’ 서울시장 예비후보 강금실 씨가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그의 경쟁자인 오세훈 후보 역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고생담을 털어놨다. ‘집안이 넉넉지 못해 몇 달씩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낸 여러 후보가 각종 매체를 통해 저마다 힘들게 성장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홍준표 서울시장 후보는 ‘중고교 때 도시락을 못 싸와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밝혔고 진대제 경기지사 후보는 ‘판잣집에서 살다가 집이 철거됐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어떤 길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후보들은 진솔하고 소상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 같은 값이면 불리한 조건을 이겨 낸 사람이 좋아 보이고 인간적 체취를 지닌 후보가 당선돼도 더 잘할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가난 고백’은 별로 감동적이지 않다. 1960, 70년대를 살았던 한국 사람치고 그 정도로 힘들지 않았던 사람이 없는 탓이다. 정말 고생이 심했던 사람들은 가난 얘기가 나오면 오히려 말을 삼간다. 유력한 지방선거 후보들은 한국에서 그래도 잘나간다는 사람이다. ‘나도 한때 가난했었다’는 말 한마디로 보통 사람들의 친근감을 끌어내기에는 우리 의식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진정한 가난의 추억이 아직 깊다.

▷지방선거에 최첨단 마케팅 전략이 총동원되다시피 하고 있다. 특정 색깔을 내세우는 이미지 기법에 이어 ‘가난 마케팅’까지 등장한 것이다. 제 아무리 기발한 기법이 나온다 해도 표를 결정하는 것은 유권자의 마음이다. 표심(票心)이 너무 가볍다고 한탄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는 게 또 표심이다. 마음을 움직일 방법에 대해 더 고민할 일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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