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지나(支那)의 꿈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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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TV에 비친 그 어린 소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머리를 빡빡 민 소녀가 오성홍기(五星紅旗)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뇌종양으로 시력을 잃어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였다. 조막만 한 손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그러나 국가(國歌)에 맞춰 거수경례를 하는 소녀의 얼굴엔 기쁜 빛이 보였다. 소녀의 나이는 여덟 살이라고 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오성홍기가 게양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소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지린 성 창춘 시민들이 ‘중국판 마지막 잎새’를 연출했다는 기사였다.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큰 별 하나와 작은 별 4개가 그려져 있는 오성홍기는 소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소녀는 별나라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슴 한편을 내리누르는 이 둔중한 느낌은 뭐란 말인가.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선 모두들 감동적이라고 눈시울을 붉힌다는데 왜 내겐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몇 년 전부터 3·1절이 되고, 동아일보 창간기념일(4월 1일)이 오면 기미독립선언문과 동아일보 창간사를 꺼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동아시아의 민족주의 부활을 경계하는 국제 뉴스와 해외 논단을 접하면서 문득 고교시절 배웠던 기미독립선언문이 생각난 뒤부터다. 동아일보 창간사는 생년월일만 다를 뿐 기미독립선언문과 쌍생아였다.

‘此(차)로 因(인)하야 東洋安危(동양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對(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를 갈스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東洋(동양) 全局(전국)이 共倒同亡(공도동망)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 問題(문제)ㅣ리오.’ 일제가 조선의 독립을 힘으로 억누른다면 4억 중국인의 두려움과 의심까지 불러일으켜 급기야 동양 평화가 실종되는 비운을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요, 호소였다.

기미독립선언문의 이 국제주의는 동아일보 창간사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창간사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라는 장(章)에서 ‘특히 동아(東亞)에 재(在)하여는 각 민족의 권리를 인정한 이상(以上)의 친목 단결을 의미하며 세계 전국에 재(在)하여는 정의 인도를 승인한 이상의 평화 연결을 의미함이라…’라고 주지(主旨)를 밝히고 있다.

이것이 1919년, 1920년을 살던 조선 선각자들의 인식 수준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민족주의를 갈망하던 그때, 조선의 선각자들은 민족주의조차 뛰어넘어 동양의 평화, 세계의 평화를 논했던 것이다. 동아일보가 사시(社是)의 으뜸을 민족주의라는 말 대신 ‘조선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세운 뜻도 거기에 있다.

무엇이 여덟 살짜리 소녀의 꿈에 오성홍기를 새겨 넣었을까. 그 꿈엔 혹시 13억 지나인(支那人)의 중화(中華)민족주의가 스며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 없는 중국 지도부의 민족주의 정책이 숨어 있지 않을까. 어린 소녀의 티 없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내가 너무 망령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지나(支那)의 꿈이 두렵다.

김창혁 국제부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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