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월급쟁이 3중고(三重苦)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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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하면서 구경 다니고, 근무하면서 맛있는 거 먹고, 봉급 받으면서 놀고….’ 출장, 점심과 휴가를 ‘봉급쟁이 삼락(三樂)’으로 꼽은 책이 있었다. 월급쟁이 인생도 즐겁기만 하다는 거다. 외환위기 때 부도위기의 중소기업 사장들이 가장 부러워한 월급쟁이들은 ‘눈치 9단’ 주특기에 안면몰수, 뻗대기, 우기기 등 서바이벌 비법을 자랑한다.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아 미운 상사에게 보복하기를 꿈꾸는 월급쟁이들은 요즘 세금폭탄 위협 등으로 허리가 휜다.

▷연초부터 월급쟁이를 괴롭힌 것은 세금. 난데없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 이미 얄팍해진 지갑을 또 털릴 위기다. 노무현 대통령이 증세(增稅) 타깃을 ‘상위 20%’에서 ‘상위 10%’로 슬쩍 바꿨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뿐, 웬만한 월급쟁이들이 세금유도탄에 노출되기는 매한가지다. 국세청이 소득을 고스란히 파악하는 ‘유리지갑’인 탓이다. 영수증 챙겨가며 연말정산 ‘전투’에서 조그맣게 승리해 봤자 증세 ‘전쟁’에서 패하면 그뿐이다.

▷게다가 ‘3·30 부동산대책’으로 연봉이 적은 월급쟁이는 은행 대출로 내 집을 마련하는 꿈도 가질 수 없게 됐다. 연봉 5000만 원이면 주택투기지역의 대출한도가 최고 2억 원으로 줄어든다. ‘진짜 부자’가 아니면 좋은 집은 꿈도 꾸지 말라는 셈이다. 집이 있다고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다섯 가족과 함께 사는 48세의 한 월급쟁이는 36세에 마련한 아파트가 10억 원짜리가 돼 종합부동산세를 내게 되자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렇게 불평했다. “손에 돈은 없는데, 왜 이리 피곤하게 합니까.”

▷1990년대 말 고용불안이란 말이 유행어가 됐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 직장인은 도둑)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등 신조어에 5년가량 시달린 월급쟁이 대부분이 오랜 직장생활 꿈을 접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착실한 경기회복으로 월급쟁이 절반 이상이 고용불안감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역시 성장이다. 좋은 일자리로 상향 이동하는 월급쟁이가 많아져야 4월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텐데….

홍권 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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