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호]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 입력 2006년 3월 2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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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좋든 싫든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앞으로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후 다원화된 우리 사회에서 차기 대통령의 조건에 대한 논의는 국민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필자는 논의의 출발점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본인 스스로 대통령을 하고 싶어 해야 한다는 것이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1992년 미국 대선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1991년 걸프전에서 승리를 거둔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90%를 넘어서고 있었기에 민주당의 후보들은 도전장 내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민주당의 강력한 후보였던 마리오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면서 여론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가 몰락하고 말았다. 이와 달리 조그만 아칸소 주의 지사였던 빌 클린턴 후보는 ‘탈냉전 이후 미국 경제의 재건’이라는 뚜렷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꼭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의사를 국민에게 분명히 전달함으로써 결국 뒤집기에 성공했다.

우리의 경우에도 콩코드기를 타고 비행하면서 창 밑으로 밥상이 차려졌나를 기다리고 여론에 마지못해 끌려 나오는 인상을 주는 소극적 리더십의 후보는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은 차기 대통령 후보에게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분명한 얘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소리를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을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면 ‘왜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라는 국민의 물음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수많은 정책적 사안에 대해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기 대통령 후보는 21세기 한국이 나아가야 할 뚜렷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건국, 근대화, 민주화를 거쳐 온 대한민국을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비전은 우리 국력의 세계적 위상으로 볼 때 국민의 지지뿐 아니라 대외적 국가신인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국민과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더는 요구하지 않는다. 국가의 역할은 일부 분야에서 여전히 중요하지만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민간 사회에 일일이 간섭해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자율, 경쟁, 책임의 원칙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중시되어야 할 때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읽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 국가론’에 입각하여 ‘알뜰 정부’를 꾸려 나가겠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진 리더십이 차기 대통령의 또 다른 조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차기 지도자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에 기대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는 이념과 비전의 공백을 지역감정이 메우고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에게 ‘땅 짚고 헤엄치는 정치’를 가능하게 했지만 국민 분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이제 ‘갈라치기 정치’를 추구하는 분열의 리더십이 아니라 국민 통합을 실현하는 지도자를 국민은 원한다.

차기 대통령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뚜렷한 전략적 비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한제국 말기처럼 한반도를 둘러싸고 주변 강대국 사이에 새로운 세력 균형이 싹트고 있기 때문에 지역 안정을 위해 주변 국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독트린을 제시하여 본인 스스로 세계적인 지도자로 부상하고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호 객원논설위원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

youngho@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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