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제용]수돗물 불신 ‘고도정수시설’로 씻자

  • 입력 2006년 3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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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한 해 동안 1500억 L 이상의 병 물을 마시고 있고, 여기에 지출되는 비용이 1000억 달러가 넘는다. 병 물이 수돗물보다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는데 병 물의 생산과 유통 등에 따른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는 실로 우려스러울 정도다.”

지난달 발표된 미국의 환경문제연구소인 지구정책연구소(EPI)의 보고서 내용이다. 두리번거릴 필요 없는 우리나라 얘기다.

지난날 수도꼭지 끝에서 졸졸졸 흐르는 수돗물을 큰 한숨을 쉬면서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은 변했다. 전 국민에 대한 수도 보급률은 크게 높아졌지만 수돗물에 대한 불신도 갈수록 커져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은 전체 국민의 1%도 안 된다던가.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고 깨끗하고 안전한 수돗물”이라는 인식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상수 원수의 오염물질의 등장은 물론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의식 발전에 따라 수돗물의 생산과 관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절차는 시민들이 수돗물을 믿을 수 있도록 과학적인 방법으로 확인시켜 주고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낙후된 재래식 수도시설을 보완하는 ‘고도(高度)정수처리 공정’의 도입 및 확산이 필요한 것이다.

고도정수처리란, 현재와 같은 통상의 수돗물 정수 방법으로는 제거되지 않는 농약, 유기화학물질, 냄새물질, 소독부산물질 등 미량 유해물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정수 과정에 활성탄이나 오존처리시설 등을 도입·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1994년 낙동강 수돗물 오염 사건 이후 주로 도입되기 시작하여 현재 전국적으로 고도정수처리시설이 운영되는 정수장은 20여 곳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고도정수처리 과정을 거치면 소독부산물, 이상한 맛과 냄새, 유기물질 등을 감소시키거나 제거해 수돗물의 수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으며, 시민들의 수돗물에 대한 막연한 불신감을 크게 해소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수돗물 고도정수처리는 기술 자립도가 매우 낮아 많은 부분을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고도정수처리 기술의 의존도를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 고도정수처리시설 운전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부산시 등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정보자료의 공유에 더욱 앞장설 필요가 있고, 전문 운영인력의 양성을 위한 수도 관리 인력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괜찮으니, 수돗물을 마시자”고 주장하기는 쉽지만, 수돗물이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실제 확신시키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믿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수돗물을 생산·공급하되,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수돗물의 안전도 등을 공인된 방법과 기관을 통해 검증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고도정수처리 공정의 도입과 운영은 수돗물의 신뢰도를 높이는 현실적인 좋은 대안일 수 있다.

22일은 14번째 맞이하는 ‘세계 물의 날’이다. 유엔에서 이미 십수 년 전에 물의 날을 만들고 기념하는 것만 보더라도 물은 국제적으로도 매우 주요한 자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른 모든 것은 다 제쳐 두고 우리가 마시는 물을 우리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선진 복지국가로 갈 수가 있을까.

윤제용 서울대 교수·환경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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