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愛國과 害國

  • 입력 2006년 3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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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어 살맛이 난다. 얼마 전 토리노 동계올림픽 선수단이 메달을 쏟아 내 국민을 기쁘게 하더니 이번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프로야구 선수들이 강팀들을 연파해 국내외 한국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 덕분에 국민의 입에서 “대∼한민국”이 절로 나오고 가슴에는 국민 된 자부심이 넘치는 요즘이다.

16세 여고생 김연아와 김유림도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세계 최고 자리에 우뚝 서 코리아의 이름을 세계에 떨쳤다.

야구 대표팀은 “한국이 일본을 30년 동안 이기지 못하게 하겠다”던 일본 최고 선수의 망언(妄言)을 실력으로 잠재워 국가의 자존심을 세웠다. 어느 정부가, 어느 정치인이 일본의 망언을 그렇게 통쾌하게 응징했던가. 세계 야구 무대는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다며 오만방자하던 야구 종주국 미국을 격파해 세계를 놀라게 한 것도 그들이다. 집권당은 “국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쾌거”라는 논평을 냈지만 대통령 이하 현 정부의 고위 관리 중 야구 대표팀의 10분의 1이라도 국민을 기분 좋게 해 준 사람이 있었던가.

국가대표 선수들은 조국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영광의 순간을 목표 삼아, 가슴에 단 태극 마크가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 힘든 훈련을 감내하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그들처럼 국민의 사기를 올려 주고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애국이다. 최희섭 선수는 “나라를 위해 홈런을 쳤다”고 말했다. 만화를 좋아하고 아직도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는 어린 여고생들도 국가의 명예를 생각하며 연습에 몰두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선수들의 애국은 자기희생이 수반된 것이어서 더욱 아름답다. 미국과 일본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야구 선수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조국의 부름을 받아들였다. 일본의 마쓰이 히데키와 대만의 왕젠민 선수가 이런저런 이유로 출전을 거부한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갸륵한가.

세계대회 출전은 곧 개막하는 프로 무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부상이라도 한다면 올 시즌을 망칠 수도 있다. 성적 부진은 곧바로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이승엽 서재응 선수처럼 올해 팀을 옮긴 선수들은 적응이 시급한 상황에서도 국가의 부름에 응했다.

국가의 명예와 국민의 사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백성들의 모습이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서도 국가와 국민이 원할 때는 땀이라도 더 바치는 백성들의 모습이다.

밝은 햇빛 뒤에 짙은 그림자가 있는 법인가. 권력을 누리는 높으신 분들은 걸핏하면 국민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 총리라는 사람은 ‘부적절한 골프’로 국가 전체가 없어도 될 혼란을 겪게 한 뒤 물러났다. ‘2인자’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은 행동을 한 것도 문제지만 대한민국 총리가 그런 수준임을 전 세계에 알려 국가와 국민을 망신시켰으니 해국(害國)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보며 전반적인 국가 수준에서 한참 뒤지는 중국의 총리를 부러워해야 하는 국민의 심경은 참담하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 또한 초라하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년 연속 아시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간신히 4.0%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기록했으나 각각 9.9%와 8.0%를 기록한 중국과 인도에 크게 뒤진 것은 물론 홍콩(7.3%)과 싱가포르(6.4%)에도 뒤졌다. 2004년에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아시아 경쟁국 가운데 바닥권이었다.

프로 선수와 아마추어 공직자의 차이인가. 정진(精進)도 희생도 없는 지도자들의 행태가 더욱 짜증스럽다. 스포츠 스타들이 만들어 내는 승전보가 없었다면 이 황량한 시절을 어찌 보냈을까.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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