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대∼한민국’

  • 입력 2006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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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을 북돋우는 데는 역시 월드컵만 한 게 없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벅찬 감격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6월 독일 월드컵에서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기대로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월드컵 특수(特需)를 맞은 기업들은 태극기와 애국가를 내세워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과 앙골라 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렸던 1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과 시청 앞 일대는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시민들은 눈발이 흩날리는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형 전광판에 비친 태극 전사들을 뜨겁게 응원했다. 태극기를 몸에 휘감고 얼굴에 페인팅을 한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무엇이 그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갖게 할까 생각해 보았다.

정치 분야에선 나라 사정이 말이 아니지만 꼽아 보면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낄 일이 적지 않다. 월드컵과 올림픽 등에서 국위를 드높인 대표선수들의 활약, 세계인의 감성을 사로잡는 한국의 문화 예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세계 12위권의 경제력…. 무엇보다 외세에 의한 강점과 분단, 군사독재와 같은 역사의 굴곡과 진통을 딛고 현재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것 자체가 세계를 상대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드높인 일이다.

물론 분단 극복, 사회 안전망 구축 등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하지만 우리의 국력과 민생 수준이 지금처럼 크고 높았던 적이 단군 이래 또 있었던가. 중국과의 오랜 교류에서 우리가 중국산 문물에 비교 우위를 느낄 수 있었고, 세계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메이드 인 차이나’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았던 것은 최근 20∼30년뿐이다. 선대(先代)의 피와 땀, 눈물 위에서 이룬 이런 성취는 경탄의 대상이지 결코 폄훼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우리 경제를 ‘아프리카 밀림보다 못한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카지노 경제’로 보는 사람들도 한국 팀을 응원할 것이다. 그들은 온 국민이 ‘짜작짝짝짝’ 하는 다섯 박자 박수에 맞춰 ‘대∼한민국’을 연호할 때 무엇을 떠올릴까. 정치적 코드에 따른 편가르기로 갈등을 부추기고,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치우친 정책으로 시장(市場)의 혼선을 키우고,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한미동맹보다 북한과의 공조를 중시하는 나라가 과연 국민이 환호하는 ‘대∼한민국’인가.

이번 월드컵 응원에선 ‘꼭짓점 댄스’가 선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한다. 삼각형 모양으로 늘어선 사람들이 맨 앞 꼭짓점 위치에 있는 리더를 따라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꼭짓점에 있는 지도자다. 대통령이 잘해야 국민도 신이 난다.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어떻게 한국 국민에게 희망을 줬는가. 축구 감독의 리더십과 대통령의 리더십을 같은 선상에 올리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한다면 호주 경제를 일으켜 10년째 장수하는 존 하워드 총리나 취임 3개월여 만에 독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예도 있다.

대통령과 국민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달라선 곤란하다. 우리 모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고한 토대 위에서 세계로 뻗어 나가는 미래지향적인 국가다. 이를 위해 이젠 대통령이 국민에게 코드를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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