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석유가 ‘中東민주주의’의 덫

  • 입력 2006년 2월 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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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외교팀이 9·11테러 이후 아랍 이슬람 세계에 일으킨 민주주의 물결은 이라크 팔레스타인 이란에 강경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고, 이집트에선 무슬림형제단의 약진 기반을 만들어 줬다. 미국이 이런 기조를 유지한다면 몇 년 안에 모로코부터 인도 국경까지 이슬람 성직자들이 집권하게 될 것이다. 신이여, 미국에 축복을!

그러나 이 모든 게 미국의 작품인가? 그렇진 않다. 실제로 그건 아랍 이슬람 세계의 50년 넘은 ‘석유정치(petrolism)’의 산물이다. 부시 팀의 실패는 그가 국정연설에서 언급한 미국의 ‘석유 중독’을 끊지 않고서도 중동의 ‘권위주의 중독’을 끊을 수 있다고 믿었던 데 있다. 그건 환상이다. 아랍 세계에서 석유와 권위주의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날 아랍 이슬람 정치 현실의 첫 번째 철칙은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토머스 제퍼슨까지 가는 데는 반드시 아야톨라 호메이니, 즉 ‘모스크(이슬람사원) 정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중동 국가에서 일단 독재자를 몰아낸 뒤엔 반드시 이슬람으로 직행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궁전과 모스크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같은 세속적 독재체제는 독립적 사법부나 언론, 진보적 세속정당, 시민사회단체의 출현을 허용하지 않았다.

모스크는 정부의 철권통치가 침투할 수 없는 유일한 곳이었기에 대안 권력의 중심지가 됐다. 사람들은 이곳에 자유롭게 모여 지역 지도자를 키우고 대항 이데올로기를 공유했다.

아랍 국가들에서 자유 공정선거가 실시되자마자 이슬람주의 세력이 갑자기 선두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이집트 국민민주당(NDP)과 팔레스타인 파타당은 권위주의 국가의 부패한 부속물로 배척당했다.

왜 이들 국가에 독립적 진보야당이 없는 걸까? 통치자들이 야당의 성장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아이만 누르 후보는 호스니 무바라크에 맞서 출마했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감옥에 갇혔다. ‘민주주의 게임’은 끝났으니 감옥에나 가라는 셈이다.

어디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에서 대만과 한국은 군사정권 붕괴 뒤 빠르게 문민 민주주의로 나아갔다. 왜? 이들 국가에는 역동적인 자유시장 체제가 있었고, 석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 스스로 교육받을 권리를 찾고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기업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했다. 그게 유일한 번영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랍 이슬람의 독재자들은 국민의 권리신장을 막으면서도 오래 권좌를 지킬 수 있었다. 바로 석유, 또는 그에 버금가는 엄청난 해외 원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두 번째 철칙이 있다. 중동에서 안정적 민주주의를 태동시키려면 권위주의 권력자를 제거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석유 값이 떨어져 새로운 지도자들이 오직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뭔가 필요할 때 스스로 변화하지 누가 재촉한다고 해서 변하지는 않는다.

그저 독재자만 제거하고 석유 값을 내리지 않는다면 결국 이란 같은 결과를 낳는다. 군사 독재자 대신 성직 독재자가 나와 석유로부터 얻은 부(富)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직 석유 값이 배럴당 20달러로 내려가야만 ‘호메이니 세상’에 막히지 않고 후세인에서 제퍼슨으로 바로 전환할 수 있다.

중동에서 석유와 민주주의는 섞이지 않는다. 아랍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인 레바논에는 기름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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