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與, 이젠 ‘기자 줄세우기’까지

  • 입력 2006년 1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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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02년 4월. 당시 이낙연(李洛淵) 민주당 대변인은 “기자실엔 종군(從軍)기자와 참전(參戰)기자 두 부류가 있다”는 논평을 냈다.

기자가 전쟁터에서 펜을 들고 취재만 하면 종군기자, 전투에 직접 참가하면 참전기자가 되는데 일부 기자들이 순수하게 취재만 하는 게 아니라 특정 후보 편을 들고 있다는 점을 시니컬하게 꼬집은 것이었다.

당시 민주당에선 노무현(盧武鉉) 이인제(李仁濟) 대통령 예비후보가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이 대변인은 한쪽 후보를 담당하는 기자가 다른 쪽 후보와 식사를 함께하며 들은 얘기를 자신이 맡고 있는 후보에게 낱낱이 전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

열린우리당 당권을 둘러싸고 대결하고 있는 정동영(鄭東泳), 김근태(金槿泰) 두 상임고문 진영의 움직임을 보면서 새삼 4년 전의 ‘종군기자-참전기자’ 논란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양쪽 진영 사람들은 이런저런 간담회와 식사 자리에서 특정 기자를 붙잡고 “당신이 도와주면 승리할 수 있다. 꼭 도와 달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심지어 “우리 쪽 담당 기자를 (평소 친분이 있는) 다른 기자로 바꿔 달라”는 노골적인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쪽’ 진영의 저녁 식사를 겸한 간담회에 갔던 기자가 ‘이쪽’ 진영 간담회에 참석하자 “저쪽하고 식사를 한 기자가 이 자리에는 왜 왔느냐”고 눈치를 주기도 했다.

특정 진영 출입기자는 그 진영 소속원이 돼야 한다는 식의 인식이 곳곳에 깔려 있다. 기자는 어떤 정당, 어떤 계파를 출입하든 관계없이 영원한 중립자일 수밖에 없다는 상식이 지금 열린우리당에선 통하지 않는 듯하다.

정, 김 고문은 모두 누구보다 앞장서서 ‘정치 개혁’을 외쳐 온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무엇이 정치 개혁인가”를 되묻고 싶다. 자신의 정치 행보에 기자의 ‘참전’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정치 개혁과는 180도 거꾸로 가는 것이란 생각에서다.

역설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이런 모습들은 기자에게는 ‘언론 윤리’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분위기에 휩쓸려 ‘참전기자’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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