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폭력시위도 언론 탓?

  • 입력 2006년 1월 2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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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시골에서 힘들게 버스를 타고 와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면 언론이 기사를 안 쓴다. 그런 언론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출범한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 공동위원회’의 첫 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진도(朴珍道·충남대 교수) 위원이 한 말이다.

이 위원회는 폭력 시위 근절 방안을 찾자고 만든 것인데 위원들의 발언은 오히려 ‘얼마나 절박하면 폭력을 행사하겠느냐’는 식으로 시위대를 두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함세웅(咸世雄) 공동위원장은 “60세가 넘은 분들이, 과격하게 폭력 시위를 하라고 해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폭력 시위를 했을 때 그 이유를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도 했다.

폭력 시위로 인한 전·의경의 피해 문제에 대해서는 ‘국방의 의무가 아닌 시위 진압을 위해 현장에 배치될 때 젊은이로서 갖는 고뇌와 갈등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마치 폭력 시위보다는 젊은 전·의경으로 하여금 그 시위를 막도록 한 게 더 잘못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함 위원장은 “시위를 진압하는 정부에 의사소통의 채널이 없다”,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정부와 언론을 탓했다. 시위대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인 심성도 있고 그동안의 관행도 있고 해서 그런 부분을 경찰이 법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는 한계점에 대한 고백은 있었다”며 애매하게 둘러 갔다.

폭력 시위의 원인에는 불법 행위에 대한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과 과잉 진압에 따른 반작용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법을 무시하는 시위대 자체에 있는 게 아닐까.

박 위원은 평화적 시위는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요즘은 평화적 시위가 오히려 언론의 조명을 받을 정도로 폭력 시위가 일상화돼 있다. 대규모 시위대는 거의 예외 없이 쇠파이프 등 ‘폭력을 위한’ 물건을 미리 준비해 오는 게 현실이다.

타인에 대한 폭력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법인 것처럼 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폭력도 그 자체로 문제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폭력이 용인될 수는 없다.

‘오죽하면 그러겠느냐’, ‘시위대의 고충도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인식이 오히려 폭력 시위를 부추길 수 있다고 한다면 위원회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장강명 정치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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