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한치 앞도 못 내다본 ‘발코니 정책’

  • 입력 2005년 12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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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 동안 3번 바뀌었다.

발코니 개조가 2일 합법화되기까지 정책 결정 과정은 곱씹어 볼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 내에서도 “가장 자주 내용이 바뀐 정책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 나온다.

‘오락가락 행정’의 과정을 보자.

10월 13일 건설교통부는 내년 초부터 주택(오피스텔 제외) 발코니 개조를 전면 허용하기 위해 건축법 시행령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올해 말 입주 예정인 아파트를 중심으로 “빨리 법을 고쳐 우리도 개조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민원이 폭주했다.

건교부는 정책 발표 11일 만에 시행령 개정을 12월 초로 앞당긴다고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정부가 ‘스피드 행정’을 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방방재청과 화재안전 전문가들이 “발코니를 개조하면 불이 났을 때 어디로 대피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에 건교부는 “가만히 있던 소방방재청이 왜 나서느냐”며 불쾌해했다. 그러나 공청회에서 발코니 개조 허용 시 발생할 안전 문제가 구체적으로 부각되자 이번에는 발코니 개조 시 대피 공간을 두도록 하는 화재 안전기준을 내놨다.

당시 건교부 담당 공무원 A 씨는 “미국 일본의 안전기준 중 좋은 것만 뽑아서 만들었으니 더는 논란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A 씨의 예상은 빗나갔다. 특히 새로 짓는 아파트에는 발코니 확장과 상관없이 옆집과 공동으로 3m²(가구당 1.5m²)의 대피 공간을 두도록 한 게 문제였다. 불 날 때를 대비해 옆집과 함께 대피 공간을 만들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건교부는 지난달 29일 새 아파트도 공동형이 아닌 단독형 대피 공간을 둘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안을 바꿨다. 사실상 공동형 대피 공간 항목을 삭제한 것.

요즘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정책이 또 바뀔 테니 두고 보자”는 의견이 많다. 발코니를 개조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아파트 주민은 “정부가 창피해서라도 단속할 수 있겠느냐”며 대피 공간을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보다 바꾸는 것이 낫기는 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현실 파악도 없이 발표부터 한 뒤 ‘널뛰기’해서야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이승헌 경제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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