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7년 나치 괴벨스 출생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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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라 불리는, 지옥에서 온, 엄청난 입을 가진 이 선전장관은 꼴도 보기 싫다. 육신과 영혼이 병든 이 자는 세상의 유일한 지배자인 신에게 비열한 거짓말을 하려는 자다.”

1933년 나치당 집권 직후 히틀러의 바그너 우상화를 공격하고 망명길에 오른 독일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이 한 말이다. 그의 비난대로 나치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언술(言術)로 독일을 파멸로 몰고 갔다.

히틀러의 추종자 중 최고 광신도였던 괴벨스는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독일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였다. 하급 군인이나 건달 출신이 주류를 이뤘던 나치의 주도세력 사이에서 어릴 때 앓은 골수염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어 군 문턱조차 가보지 못한 그는 이질적 존재였던 셈이다.

괴벨스는 젊은 시절 한때 좌파에 기울기도 했으나 신체적 결함에다 박사학위를 받고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사회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가사회주의를 앞세운 나치에 빠졌다.

히틀러가 그를 발탁한 것은 그가 29세 때인 1926년. 괴벨스는 나치 베를린지구당 위원장에 임명된 당시의 심정을 일기장에 이렇게 남겼다. “그는 37세다. 아돌프 히틀러, 난 그대를 사랑한다. 그대는 위대하고 동시에 소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재의 특성이다.”

달변에다 담대한 성격이었던 괴벨스는 이후 히틀러를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아로 연출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 “총통은 언제나 옳으시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총통 신화’를 창조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그는 국가선전기구를 장악했다. ‘국민계몽 및 선전부’가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들이 우리에게 예속될 때까지 그들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 그는 책과 유대인 교회당을 불태우도록 대중을 선동했고, 결국에는 광적으로 증오했던 유대인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나치의 종말이 다가오자 진실을 은폐하는 그의 능력은 다시 빛을 발해 ‘기적의 무기’가 있다며 수많은 소년병사를 전장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패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45년 4월 30일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 벙커에서 자살한 히틀러를 마지막까지 보좌했던 그는 다음날 아내, 6명의 자녀와 함께 히틀러를 뒤따랐다.

“우리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아니면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그는 일기에서 위대한 정치인에 무게를 더 실었지만 역사는 그를 악랄한 범죄자로 기록했다.

김동철 정치전문기자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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