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 正統性 스스로 흔드는 李해찬 총리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8분


코멘트
이해찬 국무총리는 헌정사상 최강의 실세(實勢) 총리로 불린다. ‘분권형 국정운영’의 중심에 있는 그의 역할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일상적 경제운용에서 나보다 유능하다”고 극찬했다. 그런 만큼 그의 자질과 현실 인식 및 처방은 국정(國政) 전반과 국민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이 총리의 판단과 언동(言動)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민심과 멀어지는 데 대해 국민이 불안해 하는 것도 그가 ‘대독(代讀) 총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제 이 총리는 국가 정체성(正體性) 혼란을 우려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최근 동아일보 회견 내용을 ‘의도를 알기 어려운 정치적 발언’이라면서 “(그렇게 말함으로써) 국가적으로 얻어지는 득(得)이 뭔지 모르겠다”고 깎아내렸다. 현 정부가 부닥치고 있는 ‘총체적 난국’의 원인이 바로 정권의 독선(獨善)과 오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거듭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 총리는 그동안 “경기가 하반기부터 나아질 것이다” “국정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 “한반도 상황이 분단 이후 가장 안정됐다” “나라는 이미 반석(盤石) 위에 올라 있다”는 등의 말을 해 왔다. 경기침체로 민생이 더 어려워지고 노 대통령의 연정(聯政) 제안 등으로 정국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이런 발언을 함으로써 많은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런 빗나간 현실 인식의 바탕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겠다’는 편협함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나라의 어른’이 고뇌 끝에 던진 충고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정치적 발언’이라고 폄훼하는 태도는 이념을 떠나 최고 공직자의 바람직한 자세일 수 없다. 김 추기경 같은 분이 없었어도 이 총리 등이 ‘민주화의 열매’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이 총리는 올해 초 천성산 터널공사에 반대하는 지율 스님이 단식을 중단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김 추기경에게 부탁한 적도 있다. 아무리 입장이 바뀌었어도 ‘물을 마시며 근원을 생각하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의 도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뿐 아니라 이 총리의 오만불손한 국회 답변 태도는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그는 어제도 대부도 땅 투기 의혹을 추궁하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품위와 사리에 맞게 질문하라”며 오히려 훈계를 했다. 그의 폭언록(暴言錄)은 원고지로 정리해도 수십 장이 될 만하다. 지난해에는 “조선 동아는 역사의 반역자”라고 말했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퇴보한다”는 발언으로 국회 파행을 불렀다. 그는 또 행정경험의 근거로 내세우는 교육부 장관 시절의 ‘독불장군식 개혁’으로 ‘이해찬 세대’라는 희생자들을 양산해 냈다.

정권의 정통성은 단순히 ‘표로 선출됐다’는 데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요청을 얼마나 겸허하게 수용해 국정을 효율적으로 풀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갈수록 민심과 멀어지는 이 총리의 언동은 현 정권의 정통성 기반을 스스로 흔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정치지도자로서 총리의 품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격(國格)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안타깝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