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World]박물관서 인류의 꿈을 보았다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18분


코멘트
런던 자연사박물관 입구 바닥에 그려진 대형 세계 지도 위를 어린이들이 뛰놀며 지리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우르왕국의 왕비가 착용했던 황금장신구. 사진 제공 권삼윤 씨.
런던 자연사박물관 입구 바닥에 그려진 대형 세계 지도 위를 어린이들이 뛰놀며 지리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우르왕국의 왕비가 착용했던 황금장신구. 사진 제공 권삼윤 씨.

인간은 의도와 상관없이 이 땅에 흔적을 남긴다. 흔적이란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다 남긴 것들이다. 따라서 그곳에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꿈이 새겨져 있다. 누구는 박물관을 구닥다리만 모아놓은 곳이라 하지만 꿈없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박물관을 소중하게 여긴다.

내가 처음 찾은 외국 박물관은 영국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이었다. 거기서 지구상에 한때 존재했거나 지금 존재하고 있는 동식물과 광물의 표본, 인간 생태의 다양한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장구한 생명의 역사와 인간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 뒤 외국에 나가면 반드시 유명 박물관을 찾았고 그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박물관 마니아가 됐던 것이다.

2년 전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다시 들렀다가 흥미로운 모습도 봤다. 입구 바닥에 그려진 초대형 세계지도 위에서 꼬마들이 좋아하거나 여행하고 싶은 나라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꼬마들은 지도 위를 고무줄 놀이하듯 뛰어다니며 지리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대영박물관은 거의 모든 문명과 문화의 흔적을 갖고 있어 ‘인류의 총체적 기억 창고’ 같았다. 기억만큼 소중한 자산이 어디 있던가. 나는 그 넓은 홀을 무릎이 시리도록 걸으며 문명의 향기를 맡았다. 이라크 땅을 뒤지다시피 하며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황금장신구와 왕비의 수금(하프), 아시리아 왕궁 벽면을 장식했던 ‘아슈르바니팔 대왕의 사자 사냥도’를 그곳에서 만나 그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실체를 몸으로 느꼈다.

고대 이집트문자를 해독하게 해 준 ‘로제타 스톤’과 다양한 미라, ‘사자(死者)의 서(書)’ 등은 이집트 문명이 이승뿐 아니라 저승의 삶까지 담으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그리스 정부가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엘긴 마블’(파르테논 신전 박공 부분의 부조)은 파르테논 신전이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왕궁을 개조해 만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도 뒤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해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시를 새긴 부조상, 아시리아 왕궁 정면을 지켰던 거대한 수호신상 ‘라마스’, 이집트의 ‘아크나톤 왕의 조상(彫像)’과 인체미학의 걸작이라 불리는 ‘밀로의 비너스’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 유물들은 고대 문명의 찬란함을 웅변하고 있었다. 아크나톤 왕의 조상과 밀로의 비너스를 비교해 보았는데, 그 순간 같은 인체를 두고 저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놀라움은 루브르박물관이 자랑하는 유럽 미술품으로 이어졌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오스만제국의 왕궁에서 술탄(왕)의 욕정을 채워 주던 오달리스크를 그린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 나폴레옹의 야망을 그린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시대상과 함께 화제(畵題)의 인물을 잘 그려내 ‘동양화는 산수화, 서양화는 인물화’라는 상식을 확인해 주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동서양인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각각 다른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했을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의 특별 전시실 ‘골드룸’을 가득 채운 황금장신구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대부분 3000여 년 전 흑해 북쪽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했던 스키타이인들이 남긴 것으로 동물 의장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언제나 떠나야 하는 생활 때문에 휴대하기 쉬우면서도 높은 값어치를 가진 황금에 매달린 것이리라.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유대인들이 금융업과 다이아몬드 가공업에 눈을 뜬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세계의 유명 박물관들은 꼭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만큼 이집트 유물이 많다. 재료가 돌인 데다 왕조가 3000년 넘게 지속되면서도 큰 전쟁이 없었던 까닭이다. 이집트 유물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카이로의 이집트박물관 1층엔 거대한 석상이, 2층엔 ‘20세기 최고의 고고학 발굴품’이라는 ‘투탕카멘 왕묘 출토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황금으로 뒤덮인 왕의 마스크와 미라, 황금 옥좌의 등받이에 채색으로 새겨놓은 왕과 왕비의 모습은 파라오의 권위를 짐작하게 했다.

또 ‘왕의 미라실’ 한쪽에 있는 쪼글쪼글한 람세스 2세의 미라는 시선이 살아 있어 그가 생전에 꿈꾸었던 영생을 누리는 듯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 같은 영생 불멸의 신앙을 가졌기에 위대한 문명을 창조했고, 기쁜 마음으로 이승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그보다 더 큰 삶의 에너지를 본 적 없었다.

미국 워싱턴 시 한가운데 있는 몰(Mall)을 에워싸고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역사, 항공우주, 자연사, 미술, 조각, 초상화, 동양미술, 디자인 장식, 산업미술, 인디언 미술 등 여러 분야의 전문박물관이 모인 콤플렉스였다. 150년간 연중무휴 무료 입장을 고수한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종신직 관장에게 전권을 맡겼다고 한다.

중국 문명의 깊이를 보여준 상하이박물관도 인상 깊었다. 고대 제기를 모아놓은 청동기 진열관, 역대 화폐를 시대별로 정리한 화폐실, ‘차이나’라는 이름을 낳게 한 도자의 세계를 보여주는 도자관은 보고 또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금은 지식이 경쟁력인 시대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은 모두가 가고 싶고 배울 게 많아야 한다. 새롭게 태어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하루 빨리 그런 모습을 갖추기 바란다.

권삼윤 역사여행가 traveleye@naver.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