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소주 값과 택시 요금

  • 입력 2005년 10월 3일 02시 59분


코멘트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전철역까지는 택시 기본요금이 나온다. 6월부터 기본요금이 1600원에서 1900원으로 오른 뒤 손님이 절반쯤 줄었다고 운전사들은 말한다. 요금은 18% 남짓 올랐는데 승객은 50% 감소한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택시 요금이 평균 5.1% 인상된 6월의 영업 매출은 5월보다 1.4% 줄었다.

이처럼 가격 상승폭보다 수요 감소폭이 클 때 가격탄력성이 높다고 한다. 탄력성이 1 이상인 재화의 가격을 인상하면 공급자의 판매 수입은 줄어든다. 택시 회사들이 수입 극대화를 목표로 했다면 요금 인상에 좀 더 신중했어야 옳다.

세금 수입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특정 품목의 소비세율을 올릴 때는 납세자의 반응을 감안해야 한다. 세율 인상으로 오른 가격보다 수요가 더 줄면 정부 세수(稅收)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8월에 내놓은 세법개정안에 소주 세율을 20%, 액화천연가스(LNG) 세율을 50% 올리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담뱃값도 지난해 갑당 500원 올린 데 이어 추가로 5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소주 세율과 담뱃값 인상의 명분으로는 ‘국민 건강 증진’을 내세웠다. LNG는 ‘중상위 계층의 난방 및 취사 연료’라고 들이댔다. 명분이 무엇이든 정부의 목적은 ‘세금 많이 거두기’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소주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0.06이다. 세율 인상으로 소주 가격이 20% 올라도 소비는 1.2%밖에 줄어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금주(禁酒)를 하지 않는 이상 소주의 대체재(代替財)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소주 세율이 오르면 국민 건강은 눈곱만큼 개선되고 세수는 대폭 늘어난다. 실제로 정부는 주세(酒稅) 인상으로 3200억 원, LNG 세율 인상으로 4600억 원 정도 세수가 늘 것으로 계산했다.

담배와 술 수요를 줄일 수 있으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한국인의 지나친 음주와 흡연을 감안하면 명분이 있는 정책이다. 그러나 소주나 담배 등 습관성이 강한 소비재의 가격탄력성은 세계 어디를 가든 0에 가깝다. 정부가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정책 결정의 근거를 도외시하는 비과학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세율 인상으로 가격이 올라도 소비가 별로 줄지 않을 품목을 골랐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가격탄력성이 낮은 생필품과 습관성이 강한 재화가 세율 인상의 주 타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은 정부가 앞세운 명분을 이해하기보다는 세금에만 눈독을 들인다고 분노하는 것이다.

‘건강 논리’의 군색함을 알았던지 정부 고위 관리는 소주의 대중화가 일제(日帝)의 잔재라는 주장까지 했다. ‘친일파 소주’를 타도하기 위해 세금을 때렸다는 식이다. 그러면 위스키는 미제(美帝)의 잔재라서 고율의 세금을 매기나. 소주는 고려 때 몽골에서 전래돼 조선조까지 사치주였다가 근대에 들어와 대중화됐다. 국민의 분노에 밀린 정부는 소주와 LNG의 세율 인상안을 철회하면서 “세수 부족분만큼 국채(國債)를 더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부가가치세와 법인세를 올리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어떤 형태로든 국민의 호주머니를 더 털겠다는 얘기다. 국채도 결국 국민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이래저래 국민은 소주라도 마시고 화를 달래야 할 판이다.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