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60엔 어떻게 사나]1부<3>의료서비스 맞춤시대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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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질환을 겪는 노인들이 실비로 이용할 수 있는 요양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노인요양시설인 서울 시립 동부 노인전문요양센터에서 한 치매 노인이 전문 치료사에게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중증 질환을 겪는 노인들이 실비로 이용할 수 있는 요양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노인요양시설인 서울 시립 동부 노인전문요양센터에서 한 치매 노인이 전문 치료사에게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산 경험을 ‘팔순 시어머니 구순 친정아버지’라는 책으로 펴낸 유희인(柳熙仁·52) 씨. 두 분을 돌보며 ‘병든 노년’의 실상을 진하게 체험한 뒤 자신도 비켜 갈 수 없을 ‘노후’를 종종 떠올려 본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힘겨움을 예전엔 잘 몰랐어요. 시어머니가 자존심 강한 분이라 힘든 걸 자식에게도 내색하지 않으셨고요. 누구나 나이는 드는 건데. 우리 세대야 부모님 수발드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우리가 나이 들면 어떻게 될지….”》

노년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아플 때 누가 돌봐 주느냐는 것. 평균수명 연장으로 ‘유병장수’할 가능성이 커진 데다 제아무리 건강해도 생의 마지막에 이르면 몇 년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불가피하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몸짱, 맘짱, 돈짱’이 돼야 하는데…. 우리처럼 고급 시설에 갈 돈도 없고 무료 요양시설에 들어갈 조건도 안 되는 보통 사람들의 노후가 문제죠.”

○아직은 부족한 노인 간병시설

15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의 시립 동부 노인전문요양센터. 채광이 좋고 푹신한 바닥재가 깔려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이곳엔 치매 중풍 등을 앓는 노인 143명이 생활하고 있다.

노인 8명당 1명꼴의 간병인, 1층에 1명의 사회복지사가 배치돼 있고 매주 2회 방문하는 촉탁의사가 건강을 관리해 준다. 보증금 417만6000원에 월 생활비 69만6000원이면 입주할 수 있는 전국 최대의 실비 노인전문요양시설이다.

이곳에 95세 노모를 모신 김현도(75) 씨는 “집에서 개인 간병인을 쓰면 월 200만 원이 넘고 사설 노인요양원은 한 달에 150만 원가량 든다”면서 “이곳처럼 싸고 시설 좋은 전문요양시설을 확대해 서민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비(實費) 요양시설인 이곳은 앞으로 사회가 책임지는 노인 요양의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2008년 노인수발보장제도가 도입되면 치매, 중풍 등을 앓는 모든 노인이 간병 서비스를 받거나 저렴하게 요양시설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다.

하지만 중산층이나 서민층 노인을 대상으로 실비로 운영되는 전문요양센터가 아직은 크게 부족하다. 사설 시설까지 포함해도 전국의 노인 요양시설은 400개에 불과하다. 정부는 2010년까지 1100개로 늘릴 계획이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노인시설 짓는 것을 기피해 미지수다.

○진화하는 실버타운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시니어스타워에 사는 양명자(72·여) 씨는 19일 밤 화장실에 갔다가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주저앉았다. 침실에서 자는 남편을 깨울 기력도 없던 양 씨가 화장실의 비상벨을 누르자 곧장 간호사가 달려왔다.

2000년 이곳에 입주한 양 씨 부부는 병원이 바로 옆에 있고 의료진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서울시니어스타워에는 병원 응급실이 24시간 운영되고 간호사 6명, 운동처방사 10명이 24시간 상주하며 입주자의 건강을 관리한다. 각 방에는 비상호출기와 건강이변감지 센서가 설치돼 있다. 갑자기 체온이 떨어지거나 일정 시간 입주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센서가 자동으로 체크해 곧바로 간호팀이 출동한다.

은 평형별로 1억4000만∼2억7200만 원의 보증금과 매달 1인당 38만2900원의 생활비로 비싼 편. 하지만 입주 대기자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유진욱(柳珍旭) 서울시니어스타워 관리팀장은 “지금은 중병을 앓는 노인은 들어갈 수 없다”며 “그러나 2007년 하반기에 완공되는 강서구 가양타워에는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려도 헤어질 필요가 없도록 중병 환자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실버타운 거주를 꺼리는 인식이 많지만 지금의 중년이 노년이 될 땐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암보험과 치매보험을 들어둔 홍모(61·여) 씨는 최근 간병보험에도 가입했다. 자식에게 기대할 수 없으니 스스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매달 19만4000원씩 20년간 내면 석 달 이상 입원했을 때 한 달에 100만 원씩 간병비를 받을 수 있다.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유태우(柳泰宇) 교수는 “영양과 건강 관리가 좋아져 20년 후 60대의 건강 상태는 지금의 40대와 비슷할 것”이라며 “질병 치료보다 건강증진, 노화방지에 초점을 둔 서비스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노후 건강은 현재의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운동 부족, 과체중, 흡연과 음주, 약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 늙게 만드는 습관을 버리면 오래 건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2008년 노인수발보장制 시행되면

고령화의 급진전,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 참여 등으로 개별 가정에서 아픈 노인을 돌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2008년 7월 노인수발보장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치매나 중풍을 앓는 노인 본인이나 가족이 서비스를 신청하고 수발등급판정위원회가 6개월 이상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누구나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성 질환을 앓는 모든 노인과 65세 미만이라도 중증 치매 등을 앓으면 대상이 된다.

제도가 도입되면 △전문수발사가 집으로 찾아가 간병, 간호, 목욕, 일상생활을 도와주고 △노인요양시설 또는 요양병원에 들어갈 때 입소비 간병비 등을 지원해 준다.

본인이 부담하는 돈은 전체 서비스 비용의 20%. 요양시설에 들어갈 때 지금은 100만∼150만 원을 내야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 20만∼30만 원만 내면 된다. 그러나 시행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선 재원 마련을 위해 국민이 낼 보험료. 2008년부터 전 국민이 월평균 2945∼5110원(시행 초기 3년 기준·사업자 부담 포함)의 노인수발보험료를 내야 한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수(金振洙) 교수는 “수발보장 서비스는 일단 시작하면 사망할 때까지 계속 제공돼야 한다”면서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 개인이 부담하는 보험료가 계속 늘어나고 재정 부담도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치료(cure)’가 아닌 ‘수발(care)’ 시스템이라 해도 의료서비스와의 연계가 불분명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제도 운영을 건강보험관리공단이 맡고 수발등급 판정을 담당하는 노인수발평가관리원을 신설하겠다는 계획도 비판의 대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제도 운영을 지방자치단체가 맡아야 지역밀착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며 “부족한 시설, 노인수발평가관리원 신설에 따른 비용 증가 등 문제점도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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