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경]복지제도 갉아먹는 ‘이상한 극빈층’

  • 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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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는 자녀가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경우와 형편이 넉넉한 자녀를 둔 부모가 극빈층에 가야 할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경우. 어느 쪽의 해악이 더 클까.

전자는 도덕적 타락이지만 후자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다. 전자는 개별 가족의 불행이지만 후자는 공동체를 해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가로채기 때문이다.

20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빈민층의 금융자산 조사 결과는 사회가 힘을 합해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복지제도와 도덕적 해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가난해서 정부의 생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부양 의무자의 금융자산을 조사한 결과 1억 원이 넘는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모두 1009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면서 9억 원대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 모두를 부정 수급자라고 단정 짓기는 곤란하다. 보상금을 받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나 영주 귀국 사할린 한인, 차명계좌에 이름만 빌려 준 사람이거나 자산은 압류되고 빚더미에 앉은 절박한 상황의 파산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돌봐 주지도 않는데 자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한 채 굶고 있는 노인이 부지기수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자력구제 능력이 있는 사람이 국가의 생계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간단히 덮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4051가구가 고의로 소득과 재산을 은폐해 기초생활보장을 받은 것이 드러나 69억 원의 지원비용을 토해 내야 했다.

한국의 복지예산 지출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병’에 대한 우려는 시기상조다.

그러나 벌써부터 드러나는 일부의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사회보장의 근본인 연대 정신의 훼손과 ‘복지병’의 확산을 막기 어렵다.

정직했을 때의 대가가 비리를 저질렀을 때보다 작을 때 평범한 개인은 누구라도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다. 개개인의 도덕성을 탓하기 전에 철저한 기준 준수와 실태 파악을 통해 부정 수급을 막는 것도 선진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부가 해야 할 과제다.

김희경 교육생활부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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