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강혁/국정원 안보수사 노하우 살려야 한다

  • 입력 2005년 9월 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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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은 한국과 싱가포르 두 나라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달이다. 한국은 광복 60주년을 기리는 달이며, 싱가포르는 독립 40주년을 기리는 달인 것이다. 그런데 그 특별한 날을 맞이하는 두 나라 정상의 경축사 내용이 대조를 이뤘다. 한쪽은 미래를, 다른 쪽은 과거를 얘기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과거사 규명에 온 힘을 기울이는 가운데 국가정보원도 과거사에 휘말려 있는 듯이 보인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는 도청의 문제가 그것이다.

국정원의 어두운 과거사만 부각되어 그렇게 되었을까. 사회 일각에서는 “국정원을 폐지하자” “적어도 국정원에 인정되어 있는 수사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국내 정보 기능은 폐지하고 해외 정보 기능만 보유케 하자”는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첫째로 국정원 폐지 주장은 “국가를 폐지하자”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논외로 하기로 한다.

둘째로 국정원을 그대로 존치케 하되 그 수사권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수사권 폐지 주장은 ‘국가정보원법 제16조의 사법경찰권’을 폐지하라는 것이 된다. 찬성론자들은 그 수사권이 인권 침해, 정치 사찰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폐지를 주장한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국정원 직원의 전부가 사법경찰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장이 지명하는 자’가 ‘국정원법에 열거되어 있는 범죄’의 수사를 위해서만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고 반드시 ‘검사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인데 정보수집에 무슨 수사권이 필요한가. 외국 정보기관에는 수사권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오해이거나 실정을 모르는 얘기다. 북한 중국 예멘 등 분단 경험국은 물론 프랑스 러시아 스웨덴 등 30여 개국의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다. 일부 소장학자들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는 1994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아직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상황이며, 체제 위해 세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전담수사기관이 필수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 북한의 공작 활동 영역이 국제화, 광역화되고 있어 우회 침투 및 해외공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해외, 대북, 국내를 망라하는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는 기관의 존재가 불가결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40여 년간 안보수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와 전문 인력을 갖추고 있는 현재의 국정원을 대체할 만한 기관이 없다고 하겠으며 국정원의 수사권을 다른 기관에 이관할 경우 심각한 안보 공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국민의 정부 이후 적법절차의 준수 등 자체의 노력을 통해 수사 관련 인권 침해 사례가 들려 오지 않았다는 점도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안보위협 요소로 대두되고 있는 테러, 마약, 국제범죄 등은 국내외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상호연관 속에 발생하고 있어 관련 정보의 통합적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시된다. 또한 국제 이슈가 곧바로 국내에 파급되는 국제화 시대에 있어서 국내, 해외, 북한 등 모든 분야의 정보를 총괄하여 분석할 수 있는 종합적 역량 강화가 더욱 요구됨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국내 정보 기능과 해외 정보 기능을 분리하여 각각 다른 기관이 담당케 하자는 발상은 오늘의 국가안전을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을 잘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강혁 한국비교헌법학회장·전 한국외국어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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