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우물 속의 달, 본고사 논란

  • 입력 2005년 7월 1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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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본고사’인지를 둘러싼 서울대와 정부의 갈등이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불안과 혼란을 느끼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이들의 발길을 논술학원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논술학원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신이나 수능 학원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현 시점에서 서울대 논술고사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끌어야 할 사안인지 잘 모르겠다.

그 이유는 첫째, 서울대가 어떤 유형의 문제를 논술고사로 내놓을지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문제의 성격을 가지고 따지고 있는 것은 배 속의 아기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하며 열을 올리는 것과 진배없다.

이번 논란이 교육 문제가 아니라 다분히 정치적인 사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체도 없는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그럴듯한 해석을 덧붙여 지지자를 끌어 모으는 행태는 상대방을 기죽이기 위한 정치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둘째, 누구나 만족하는 입시제도란 없다. 입시제도 자체가 경쟁을 통해 사람을 걸러내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특수목적고에 다니면 특목고에 유리한 입시제도를 지지하고, 아이가 특목고에 떨어져 일반학교에 다니면 일반학교에 유리한 제도를 요구하는 것이 학부모의 심리다.

여기에다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시행하면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이 유리할 것이라는 오해도 혼란에 한몫 작용하고 있다. 우선 이런 주장이 처음 어디에서 제기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발언을 처음 한 사람들은 학원가가 아니다. 학부모도 아니다. 교육평등주의를 지향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학부모단체에 의해 ‘주장’되었다.

오히려 지금 학원가에서는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라는 ‘복병’을 만나 생존에 부심하고 있다. 학원은 지금처럼 오지선택형 문제에 대비한 암기와 선행학습에는 경쟁력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서너 개 과목을 합쳐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에 대비할 수 있는 곳은 학교이지 학원이 아니다.

한 학원장은 “우리도 서울대 교수들의 강의록을 구해 보며 대비하고 있으나 어느 전공 교수들이 어떤 진용을 짜서 어떤 문제를 낼지 모르는 마당에 통합교과형 논술을 가르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실토했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것은 새로운 문제유형을 만들어내야 하는 서울대다. 본고사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어떻게 문제를 만들어낼지, 그럴 능력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 명의 교수진이 몇 달간 세미나와 합숙을 해야 할 것이다. 그 기간에는 연구와 강의도 전폐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불필요하고 소모적 논란을 접고 일단 기다려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논술에 대비할지, 내신에 대비할지, 수능에 대비할지 혼란스럽다고? 이는 학부모의 불안감을 이용해야 장사가 되는 사교육 시장의 논리일 뿐이다. 이 3개의 영역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낙관론자인가?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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