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성희]좋은 대통령, 나쁜 대통령

  • 입력 2005년 7월 1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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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학자들은 뉴스를 둘로 나눈다. 사건 사고를 다루는 경성뉴스(hard news)와 사회의 흐름이나 경향에 초점을 둔 연성뉴스(soft news)가 그것이다. 기사 작성방식에 따라 핵심 내용을 앞에 배치하는 역피라미드 형식의 스트레이트(straight)와 이야기하듯 술술 풀어가는 피처(feature)로 나누기도 한다.

경성뉴스는 주로 스트레이트 형식으로, 연성뉴스는 주로 피처로 꾸미지만 요즘에는 읽는 맛을 돋우기 위해 종종 경성뉴스를 피처 기사로 소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뉴스를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로 뚝 잘라 분류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학문의 영역에서 명쾌하게 구분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흔히 쓰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영미(英美) 중심의 단어다. 다른 시각에서는 순교자로 숭앙받을 터이니 말이다. 미국의 9·11테러 사건이나 영국의 7·7 사건은 한쪽에서는 참혹한 테러이지만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성전(聖戰)으로 기록할 것이다.

세상 일이 그런 모양이다. 아기 돼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베이브’에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만찬 상에 올려질) 동물들은 ‘대학살의 시기가 왔다’며 절규한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의 언론은 ‘유가 비상’이라고 우려를 표시하지만 산유국이나 미국의 텍사스 주처럼 석유를 생산하는 지역에선 오히려 국제 유가가 떨어질 때 비상이다.

물론 언론 현장에선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곧잘 가른다. 다른 많은 사람도 즐겨 사용한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씨실과 날실로 섞여 짜여 있어 뉴스를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양분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단순 명쾌한 이분법이 뉴스를 전달하고 또 활용하는 데 제법 쓸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경우가 다르다. 대통령이 뉴스에 선과 악을 부여하는 것은 개인적인 의견 수준을 넘어 곧바로 정책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인륜인 범죄에 대한 응징처럼 보편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사안에 대한 의견 표명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국론이 응축되지 않은 첨예한 현안은 신중을 기해야 하며, 예단은 특히 금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가려냈다.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부동산 정책 수립’을 좋은 뉴스로, ‘대학별 본고사형 논술고사’를 나쁜 뉴스로 지목했다.

뿐만 아니라 중앙언론사 편집 보도국장과의 간담회에서는 “나를 도와주는 언론, 내게 우호적인 언론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해 ‘도움이 되는 언론’과 ‘도움이 되지 않는 언론’을 가려냈다. 권력자가 어느 언론을 향해 “당신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그 언론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렇다. 언론의 정당한 짝은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월급을 털어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를 돕는 것이 언론사에 꼭 보탬이 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고대 중국의 정치사상가 한비(韓非)는 이런 말을 했다.

‘군주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신하 자신이 잘 보이려고 꾸밀 것이다. 군주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표정을 내비치지 않으면 신하는 본심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며… 그러므로 군주는 신하들로 하여금 직분을 지키게 하고 백관들로 하여금 일정한 법을 따르게 하여 각기 능력에 맞추어 일을 시키고….’(한비자 ‘主道’ 편에서) 아무튼 한비는 그런 까닭으로 ‘군주가 슬기롭지 않으면서도 슬기로운 자를 거느리고, 지혜롭지 못하면서도 지혜로운 자의 우두머리가 된다’고 했다.

뉴스의 좋고 나쁨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에 비하면, 지도자를 ‘성공한 지도자’와 ‘실패한 지도자’로 나누는 일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각종 경제 지표와 성과물이 증거로 남고, 당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 그 잣대가 된다. 뿐만 아니라 역사는 대통령의 성과에 따라 분야별 성적도 내고 평균 점수도 낸다. 경제에는 C, 정치에는 A, 이런 식으로 말이다.

비록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세상의 절반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국민은 한결같이 대통령이 과락(科落)을 면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임기를 마치기를 기원하고 있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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