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905년 러 전함 포템킨號의 반란

  • 입력 2005년 6월 27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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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차 러시아혁명을 터지게 한 도화선 가운데 하나는 그해 6월 27일 발생한 전함 포템킨(포>킨)호의 반란이었다. 이 반란을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썩은 고기’였다.

제정러시아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는 데다 평화적 시위 군중에 정부가 발포한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러시아 전역으로 폭동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포템킨호의 썩은 고기 급식에 분노한 수병들은 반란을 일으켜 전함을 장악했다.

수병들이 오데사 항에 입항하자 소식을 전해 들은 시민들이 이들을 환영하러 부두로 몰려 나왔고 진압군이 출동해 숱한 희생자를 낳았다. 분노한 시민들은 수병들과 합세해 혁명의 대열에 나선다. 1905년 혁명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12년 뒤 볼셰비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지만 전함 포템킨호의 반란은 러시아혁명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이 혁명 20주년을 기념해 1925년에 만든 영화 ‘전함 포템킨’으로 더 잘 알려졌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곧잘 꼽히곤 하는 이 흑백영화는 영화를 사회 변혁의 무기로 바라보는 전 세계 영화인들의 교과서였다.

이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내용보다는 극단적인 장면을 대조시켜 편집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몽타주’기법 덕분이다.

에이젠슈테인은 다가오는 진압군과 도망가는 군중, 군대의 직선적 행진과 군중의 무질서한 움직임, 치켜든 칼과 깨진 안경, 피 흘리는 여인의 얼굴 등을 이어 붙이는 몽타주 편집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극대화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오데사 계단의 학살 장면. 브라이언 드팔머 감독의 영화 ‘언터처블’을 비롯해 숱한 영화와 광고들이 학살극 와중에 유모차가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설정을 패러디했다.

에이젠슈테인은 혁명의 무기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끝까지 공산당원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끊임없는 비난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반면 그가 개발한 몽타주기법을 오늘날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그의 조국이 혐오해 마지않던 자본주의의 꽃 할리우드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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