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공양미 삼백 석’

  • 입력 2005년 5월 20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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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의 입학시험 논술 문제다. “공양미(供養米) 삼백 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사례를 들어 자살의 유형과 해법을 제시하라.” 수험생들이 어떻게 썼을지 알 길은 없지만 이런 내용의 답안도 있을지 모른다. “눈먼 아버지를 놔두고 혼자 죽는 게 과연 잘한 일인가. 확실하게 눈을 뜬다는 보장도 없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 아버지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어떤 명분을 붙여도 자식이 부모를 두고 목숨을 버리는 것은 불효(不孝)다.”

▷하지만 그런 식의 답안은 많지 않을 게다. ‘심청전’은 우리에게 효를 상징하는 고전(古典)이고 주인공 심청은 효녀의 대명사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용왕의 제물이 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그런 희생이 있어 마침내 심청은 왕비가 됐고 맹인 잔치에 참석한 아버지는 눈을 떴다. 소설 곳곳에 효를 강조하는 유교사상과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불교사상이 흐른다.

▷‘심청전’의 효 사상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는 곳이 전남 곡성군이다. 매년 가을 ‘공양미 삼백 석 모으기’ 행사를 열고 모인 쌀을 팔아 이듬해 여름부터 60세 이상 시력장애 저소득 노인들의 개안(開眼)수술을 해 주고 있다. 행사 때면 공양미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쌀 대신 돈을 보내오는 주민이나 출향(出鄕) 인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마련된 기금이 1억4000여만 원. 지금까지 녹내장 백내장 등으로 고생하던 노인 500여 명이 빛을 찾았고 올해는 300명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쌀 개방 문제로 농민들이 많이 예민해졌지만 쌀은 우리에게 여전히 정(情)이 넘치는 식품이다. 사찰에는 늘 공양미가 넘치고, 누구나 담고 퍼 갈 수 있는 쌀독이 놓여 있는 성당도 적지 않다. 고향의 어머니가 차려 준 쌀밥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그런 쌀이 모여 이제 노인들에게 새로운 세상과 희망을 찾아 주고 있으니 참으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쌀 인심이 후한 사람, 당신은 이미 심청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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