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20년 나이팅게일 출생

  • 입력 2005년 5월 11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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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저기 고통의 집에서 램프를 든 여인이/어둠 사이로 방에서 방으로/천사처럼 지나는 것을/아픈 자들은 천국의 꿈에 취해/벽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에 입을 맞추네.’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1807∼1882)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게 바친 헌시(獻詩)의 일부다.

나이팅게일은 1820년 5월 12일 영국 더비셔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상류층 여성들이 꿈꾸던 삶은 나이가 차면 사교계에 나가고 결혼해 귀족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젊은 나이팅게일은 좀 달랐다.

간호사가 되겠다는 말을 꺼내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간호사를 매춘부 비슷한 직업으로 보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주치의가 있었고 병원은 일종의 빈민수용소였다. 집안의 반대와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간호사가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1853년 크림전쟁이 터지자 나이팅게일은 수십 명의 간호사를 이끌고 달려갔다. 최초의 종군간호사였다. ‘여성이 전쟁터에서 잘할 수 있을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나이팅게일이 가기 전 40%에 이르던 부상자의 사망률이 2%까지 떨어진 것이다.

잠까지 잊고 부상병을 돌본다는 그의 스토리가 알려지자 영국 전역은 감동으로 들끓었다. 나이팅게일은 빅토리아 여왕 다음으로 유명한 여성이 됐고 국민의 성금으로 간호학교가 처음 설립됐다.

나이팅게일은 19세기 영국이 낳은 최고의 스타였다. 이에 대해 다소 비딱한 해석도 있다. 밖으로는 제국주의로 비판받고 안으로는 산업혁명으로 물질주의가 만연했던 영국 사회에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영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백인이고 프로테스탄트이며 순수 영국인이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여성이 간호사라는 비천한 직업을 스스로 택해 전쟁터에서 헌신했다…. 딱 들어맞는 영웅적 인물이 아닌가.

하지만 언제나 해석은 해석일 뿐 실재(實在)는 바뀌지 않는다. 나이팅게일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원히 ‘흰옷을 입은 천사’다.

임종 직전 훈장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나이팅게일은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과분합니다, 정말 과분합니다(Too kind, too kind).”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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