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핀란디아’를 들으며

  • 입력 2005년 4월 5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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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49번째 맞는 ‘신문의 날’입니다. 1896년 4월 7일 한글전용과 띄어쓰기를 단행하며 조선 민중 속으로 뛰어든 이 나라 최초의 민간지 ‘독립신문’의 정신을 잇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잔 시벨리우스(1865∼1957)의 교향시 ‘핀란디아’를 틀어 놓고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며 ‘대한민국 종이신문’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핀란드의 조국 찬가인 이 곡은 제정(帝政) 러시아가 임명한 핀란드 총독의 혹독한 언론 검열에 맞선 신문기자들을 돕기 위한 기금 모으기 행사에서 초연된 곡입니다.

세계 언론사(史)에서 한국의 신문처럼 민중과 고난의 역사를 함께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집권 세력은 몇몇 신문을 겨냥해 신문시장에서 1개사가 30%, 상위 3개사를 합쳐 60%가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총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가 30% 이상 당선되면 안 되고, 상위 3개 정당의 득표율이 60%를 넘으면 안 되도록 법을 만든다면 그런 나라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겠습니까.

신문은 독자들이 ‘취사선택’하는 것이지, 정부가 ‘선택공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년의 민주투사임을 자부하는 이들이 지난날 자신들을 옹호하고 대변해 준 신문은 탄압하면서 자신들을 매도했던 방송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자니 어려웠던 시절 고락을 나눈 본처(本妻)를 외면한 채 애첩(愛妾)의 치마폭에 싸인 파락호(破落戶)가 연상됩니다. 신문을 옥죈 사람들의 말로(末路)는 늘 비참했습니다.

신문에 글줄깨나 써 본 이들은 붓을 꺾는 절필(絶筆)보다 살얼음 밟듯 표현을 고쳐 가며 붓을 잡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포기보다 견딤이 더 힘들 때가 많지요. 그런 점에서 신문사를 박차고 나가면서 언론탄압에 맞선 선배들 못지않게 ‘굽은 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키듯’ 묵묵히 신문을 지킨 선배들에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1974년 12월부터 7개월 동안이나 동아일보의 ‘백지(白紙) 광고’란을 채워 준 ‘위대한 독자’들에게도 경의(敬意)를 표합니다.

암울했던 1980년대, 동료 기자들과 통음(痛飮)할 때면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 가사를 ‘기자’로 바꿔 부르곤 했습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기자가 되어/…/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너희들은 자랑스런 기자의 아들이다/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아서라 말아라 기자 아들 너로다.’

이 노래 가사를 ‘투사’로 바꿔 부르던 이들은 이제 기득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 ‘투사’들을 응원했던 신문이 이전보다 더한 탄압과 모욕,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칼자루를 쥔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제 어디서나 신문의 큰 사명입니다. 대통령을 시켜 준다 해도 거절하는 사주(社主), 장관자리를 마다하는 편집국장, 자신의 직업을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와도 바꾸지 않는 기자가 쏟아져 나와야만 신문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독자가 지어 주신 올해 신문의 날 표어인 ‘독자 앞엔 등불처럼, 세상 앞엔 거울처럼’을 가슴에 새기며 다시 마음을 다집니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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