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0년 가톨릭 ‘참회의 미사’

  • 입력 2005년 3월 1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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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톨릭은 기독교도 사이의 분파와 진리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행한 폭력, 그리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2000년 3월 12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가톨릭 개교(開敎) 이래 처음인 ‘참회의 미사’가 열렸다. 파킨슨병에 시달리는 노(老)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추기경들이 조목조목 ‘과오’를 나열할 때마다 예수상(像)에 입을 맞췄다.

과오에는 중세시대 마녀 화형식, 신대륙 원주민 학살, 여성 억압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유대인 박해와 십자군 원정 참회였다.

유대인은 ‘예수의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서구사회의 이단아로 떠돌았다.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대학살)를 저지를 때도 교회는 침묵했다. 십자군 원정은 범(汎)이슬람권을 기독교인의 적으로 돌려세운 주범이다.

교황은 ‘대희년(大禧年·예수탄생 2000돌)’인 서기 2000년을 기해 ‘종교간 화해’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 미사 한 달 전 모세를 축출했던 이집트를 방문해 수니파 이슬람 지도자의 손을 잡았고, 미사 다음 주에는 이스라엘을 교황으로서 처음 공식 방문했다.

사실 유대인들은 참회가 불만족스러웠다. 교황청이 “이번에 가톨릭이 용서를 구한 대상은 신이지 특정 집단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기 때문. 하지만 교황은 “유대인들이 20세기에 겪은 비극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 기독교인과 유대인 간에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길 기도한다”고 언급해 이들의 불만을 달랬다.

교황의 뜻은 전 세계 가톨릭 교구에 확산됐다. 한국 가톨릭은 부처님 오신 날 경축 메시지를 처음으로 불교계에 전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유가(儒家)의 큰어른 김창숙 선생 제례에 참석해 큰절을 올렸다. 12월에는 주교회의가 △외세를 이용한 포교 △문화적 갈등 야기 △분단 극복에 미온적이었던 점 등을 반성하는 한국판 참회문을 발표했다.

종교계의 2000년은 이처럼 따사로웠다. 그러나 9·11테러와 이라크전이 할퀴고 간 지금, 5년 전의 화해는 한낱 꿈이었던 것 같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참회의 송(誦)은 정녕 인간에게 통하지 않는 신과의 귓속말에 불과했던가.

김준석 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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