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9년 덩샤오핑 미국 방문

  • 입력 2005년 1월 27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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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鄧小平)은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미국 텍사스의 한 로데오 경기장에 나타났다. 5척 단구에 얼굴 절반 정도를 가리는 큰 모자를 덮어 쓴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덩이 모자를 벗어 흔들자 관중의 환호가 쏟아졌다.

1979년 1월 28일 시작된 덩의 미국 방문은 ‘덩 신드롬’을 낳았다. 그는 세계 최대 공산국가 지도자답지 않게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방미 일주일 동안 그는 워싱턴에서 정치인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본주의 문화를 체험했다. 포드자동차, 보잉항공사 등을 찾아다니며 꼬치꼬치 질문을 해대기도 했다. 덩은 여러 면에서 1959년 미국을 방문했던 소련 지도자 흐루시초프와 비교됐다. 흐루시초프의 방문은 훨씬 떠들썩했지만 미국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그에게 미국인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덩의 미국 방문은 1979년 1월 1일 양국간 정식 국교가 수립된 직후 이뤄졌다. 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미국을 방문한 최초의 중국 지도자였다. 당시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고,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은 ‘경제 제일주의’로 돌아서면서 세계 최대시장 미국을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을 둘러보고 돌아온 덩은 귀국 성명에서 그 유명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설파했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돈을 잘 벌 수 있으면 좋은 체제’라는 주장이었다. 그 뒤 중국은 실용주의를 채택하며 경제대국의 길로 들어섰다. 덩은 1985년 미국 타임지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마르크스 때문”이라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내가 하는 일이 미워서 그가 내 귀를 멀게 하는 벌을 내린 거죠.”

흑묘백묘론에는 철저한 정경분리 원리가 담겨 있다. 경제 분야에는 자유화를 추진하지만 정치 부문에서는 사회주의식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이다. 요즘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 사망 이후 중국 정부가 벌이는 강력한 사회통제는 그동안 중국의 눈부신 발전상에 가려져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반쪽’의 중국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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