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與野, 신문법이 그렇게 만만했나

  • 입력 2005년 1월 2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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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추진해 온 이른바 ‘4개 쟁점 법안’ 가운데 신문법안(언론피해구제법 포함)만 1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직후 여야는 서로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측은 “주요한 내용이 빠졌다”며,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여야의 불만 토로와 달리 신문법안이 전격 처리된 전말은 철저한 ‘정치적 흥정의 결과’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선 여야는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의 경우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연내 처리’를 진작 포기했다. 핵심 조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도 했지만 자칫 어설프게 타협하거나 밀어붙일 경우 4월 치러질 국회의원 재·보선 표심(票心)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사학법의 경우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 여부를 놓고 여야가 교육계 내 대리전을 벌였기 때문에 상대 당 주장을 수용했을 때 지지층 이탈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찬양·고무조항 등을 놓고 대립한 국보법도 양당 모두 어설픈 합의가 초래할 지지층의 반발을 우려해 최종 합의를 미뤘다.

4개 법안 중 가장 여야 간의 의견이 접근해 있던 과거사법은 한나라당이 조사 범위 중 ‘친북활동에 의한 테러’ 조항 삭제에 강력히 반대하는 바람에 막판 합의가 불발됐다.

결국 4개 법안 중 하나라도 처리했다는 ‘성과’가 필요했던 열린우리당과 ‘발목잡기’를 한다는 이미지가 부담스러웠던 한나라당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가 신문법안이었던 셈. 내용도 열린우리당은 “시장점유율 규제 조항을 관철시켰다”며, 한나라당은 “광고비율 규제 삭제 등 독소조항을 없앴다”며 편리하게 홍보할 수 있도록 어정쩡하게 타협됐다.

문제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신문법이 언론 자유의 원칙보다 정치적 흥정으로 처리돼도 좋은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언론학계에서는 벌써 “정권 차원에서 악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문법안 표결 직전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국회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울부짖던 장면이 새삼 떠오른다.

이승헌 정치부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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