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당정합의 퇴짜 놓은 與의원들

  • 입력 2004년 12월 30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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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8일 오후 5시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을 찾았다. 전날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가 과거 분식(粉飾)회계를 향후 2년간 집단소송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는 당정의 요구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부총리는 소위 위원장인 최재천(崔載千) 열린우리당 의원을 만나 “제발 회기 내에 통과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 시간이 급하다”고 통사정을 했다.

실제 정기국회 폐회가 코앞에 다가오자 법사위 소위는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안 심의를 뒷전으로 미뤄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법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은 과거 분식회계에 대해 ‘줄소송’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이 부총리가 이날 여당 법사위 간사의 소매를 붙잡고 매달린 것도 이런 상황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29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증권집단소송법안은 부결됐다. 이 부총리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표결에 부친 결과 반대 5표, 찬성 3표로 부결 처리된 것이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열린우리당 4명, 민주노동당 1명이었고, 한나라당 의원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27일 증권집단소송법 당정협의를 가진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금할 수 없다. 당시 홍재형(洪在馨) 정책위의장 주재로 이 부총리,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 윤증현(尹增鉉) 금융감독위원장, 여당 재경위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모여 가진 연석회의에서는 ‘과거 분식에 대해선 2년 유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법사위 소위는 당정협의의 결론을 퇴짜 놓은 셈이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매사에 ‘시스템’을 강조해 왔다. 인사도 정책도 시스템에 따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당정협의의 결론이 법사위 소위에서 뒤집힌 경위는 아무리 돌이켜봐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결과라고 볼 수 없다.

법안심사소위가 증권집단소송법안을 부결시킨 뒤 한 경제 관료가 털어놓은 “이런 식이라면 바쁜 장관들을 불러 모아 굳이 당정협의를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불만이 설득력 있게 귀에 들어왔다.

최영해 정치부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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