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경청 능력’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삼성의 한 임원은 최근 “선대 이병철 회장이 (아들에게) 경청하는 참을성을 가르치기 위해 일본어로 된 경청법 책들을 많이 구해 읽도록 했다”고 회고했다. 훈련을 통해 습득했다는 얘기다. 고 이병철 회장도 생전에 ‘경청’이란 휘호를 즐겨 썼다.
듣기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송년회 철이어서 더러는 실감할 것이다. 모처럼 동창들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좀 많은가. 이런저런 자랑도 하고 싶고, 억울한 일 하소연도 하고 싶고….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안 온다. 으레 입심 좋은 동창 하나가 시종 혼자 떠들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또 왜 그리 큰지, 헤어질 때면 약까지 오른다. “내, 다시 나오나 봐라.”
사람들은 대체로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인정받고 싶은 본능적 욕구 때문이다. 잘 듣기 위해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1, 2분만 지나면 벌써 짜증이 나고 주의는 산만해진다. 듣고 있는 척할 뿐 머릿속은 다른 생각들로 복잡하다. 어릴 때부터 듣기 훈련을 제대로 안 받아서 그렇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기로는 정치인만 하랴. 대중연설에 뛰어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말은 “총재님, 마이크 여기 있습니다”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의만 주재했다 하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혼자서 얘기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말이 적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무회의 발언 시간도 긴 편이다. 원고에 의존하기보다 즉석연설에 강한 데다가,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말의 자기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몇 번이고 부연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일까. 말이 길어지다 보니 실수도 나오고 거친 표현도 나온다. 말이 곧 자신의 우환(憂患)이자 나라의 우환이 될 때도 있다.
세계적인 컨설턴트로 ‘듣기 먼저, 말하기는 다음’이라는 책(듣기력, 이코비지니스, 2004)을 쓴 토마스 츠바이펠은 듣기만 잘해도 성공한 CEO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주의해서 잘 들어라. 그러면 성공을 위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무수히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 넬슨 만델라, 잭 웰치 전 GE 회장이 그가 뽑은 듣기에 성공한 지도자들이다.
‘듣기의 달인’이 되면 남의 말은 충분히 듣고 자신의 말은 짧게 하게 된다고 한다. ‘말하고 있는 동안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새해에는 노 대통령에게 경청을 권하고 싶다. 마침 국정(國政) 운영의 기조도 바뀐다고 하기에….
이재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