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지도층 보면 비전이 안보인다

  • 입력 2004년 12월 14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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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사 탓에 숨이 턱 막히다가 ‘W이론’과 ‘WW 중심권 이론’을 접하곤 속이 잠시 후련해졌다.

W이론이란 서울대 공대 이면우 교수가 1992년 주창해 관심을 끌었던 이론이다. “한국인은 신바람이 나면 놀랄 만한 창의성과 에너지를 발휘한다”는 게 그 알맹이다. 이 교수는 최근 ‘생존의 W이론’이란 책을 내고 W이론의 실천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기르는 게 급선무라는 것. 청소년들이 명문대, 유망학과의 사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도전정신, 창의성을 높이 평가했다.

▼政爭과 경제失政의 한해▼

WW 중심권 이론은 뭔가. 세계지도를 살피면 한반도와 중국의 해안선에서 영문자 W 모양이 보인다.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를 잇는 해안선에서도 W 모양이 나타난다. 한반도, 중국, 인도차이나, 인도 등을 아우르는 지역을 ‘투 더블유(WW)’라 하고 이곳이 21세기에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WW 중심권 이론이다. 이를 주창한 학자는 미래학자 하인호 박사다.

1981년부터 WW 중심권 이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하 박사는 “한국의 지도계층이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며 비전을 펼쳐야 젊은이들이 원대한 포부를 품고 미래 개척에 나선다”고 역설한다. 한국은 동서양을 결합한 일류 국가가 될 수 있으며 WW 권역에서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W이론과 WW 중심권 이론의 W 글자를 붙이면 WWW가 되는데 이는 인터넷을 상징하는 www(world wide web)와 같다. 한국이 디지털 강국이 되기 위해서도 창의력을 바탕으로 멀리, 크게 봐야 함을 암시한다 할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의 장밋빛 미래상이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면 금세 답답해진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이 집계한 올해 1위 검색어를 봐도 한국 사회엔 칙칙한 그림자가 깔렸다. 엠파스에서는 ‘탄핵’이, 다음에서는 ‘아르바이트’가 각각 1위로 나타났다. 정치가 국민을 괴롭혔고 경제는 무척 피폐해졌음을 알 수 있다.

비생산적인 정치행태와 교조주의적인 경제정책 때문에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있는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빈민층, 소외계층을 위한다는 정권이 내놓는 어설픈 분배위주 정책 탓에 성장이 주춤해지면서 오히려 이들의 삶은 더욱 곤고해졌다.

집권층은 시장경제에 대해 겸손하지 않다. 공권력이 무리하게 민간 활동에 개입하고 공무원 수를 늘리고 정부 조직을 키우려 하니 경제활동이 탄력을 잃고 석고처럼 굳어져 가는 것 아닌가. 정부는 기업에 대해 투자를 늘리라고 다그치면서도 투자를 늘린 기업들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제재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정부는 뭐 하는 곳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생길 정도다.

▼‘21세기 한국 중심론’ 걸림돌▼

교육은 어떤가. 올해 수능 하나만 봐도 정부의 관리능력이 드러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합숙을 해가며 만든 사회탐구 과목들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수험생들을 곤경에 몰아넣지 않았는가. 줄줄이 쉬운 문제를 내 “과외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선전하려다 입시제도 자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어려운 것, 쉬운 것을 골고루 출제하는 게 상식인데 이것도 모르는 이들을 전문가라 할 수 있을까.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들이 지도층에 앉아 선량한 시민들 위에 군림하면 그 나라는 미래가 어둡다. 한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억누르는 좀팽이들이 정쟁(政爭)에 집착하면 한국은 개도국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여전히 그러면 국민들은 참지 않는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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