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8년 쿠바독립

  • 입력 2004년 12월 9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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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10일 열리는 쿠바 독립기념일 축제. 쿠바인들은 럼에 콜라를 섞은 ‘쿠바 리브레(Cuba Libre·자유 쿠바)’라는 술로 축배를 든다. 쿠바 독립 축하주(酒)에 녹아든 가장 미국적인 음료. 콜라 빠진 ‘쿠바 리브레’는 맛을 낼 수 없듯이 미국 없는 근대 쿠바 역사도 상상하기 힘들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쿠바는 400여 년 동안 스페인 땅이었다. 19세기 말 스페인의 가혹한 탄압통치에 맞선 원주민의 반란이 거세지면서 쿠바는 거의 교전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때 미국이 쿠바로 눈을 돌렸다. 미국이 내건 슬로건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새로운 땅을 개척해서 문명화시키라는 사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명분이었다.

1898년 4월 미국은 쿠바 땅에서 스페인과 전쟁에 돌입했다. 존 헤이 당시 미 국무장관의 표현대로 미-스페인 전쟁은 ‘눈부신 소(小)전쟁’이었다. 군현대화 작업에 몰두하던 미국에 스페인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쟁은 수개월 만에 끝나고 그해 12월 10일 쿠바는 스페인 통치에서 벗어났다. 미국에 승리의 열매는 너무 달콤했다. 쿠바를 독립시켜 내정 간섭의 기반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령이던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까지 덤으로 얻어냈다.

미-스페인 전쟁은 미국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팽창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했고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지위는 급상승했다. 쿠바 독립은 한 국가의 영토와 주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은 채 그 국가의 자원과 시장을 통제하는 ‘미국식 제국주의’의 시발점이 됐다.

쿠바에는 관타나모 미군기지가 건설되고 미국의 지지를 받는 독재자들이 줄을 이어 집권했다. 쿠바는 미국 관광객들을 위한 ‘환락의 섬’으로 변해갔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 지휘 아래 쿠바가 사회주의로 돌아서자 미국은 경악했지만 끊임없이 카스트로 축출을 시도하고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쿠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가난에 지친 쿠바인들은 바다 건너 80마일만 가면 닿을 수 있는 미국 마이애미로 무작정 배를 저었다.

“스페인이 가도 미국은 남을 것이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호세 마르티가 남긴 예언이 오늘날 ‘쿠바 리브레’ 술잔을 기울이는 쿠바인들에게 어떤 여운을 남길까.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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