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정일]농부가 키질하듯 다스려라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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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려 일구어낸 곡식을 멍석에 펼쳐 놓고 태질과 도리깨질을 한다. 끝나면 소출을 그러모으고 다시 키질하여 벼를 까분다. 알찬 벼는 아래로 떨어지고 쭉정이와 검부러기는 날아간다. 키질은 무엇보다 경험 겸손 정성이 중요하다. 손아귀 힘만 믿고 까불면 필경 알곡까지 날아가 버린다.

대권에 오르는 길은 구절양장 밭갈이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직의 첫째 덕목은 대의(大義)에 따른 국민과의 의사소통 능력, 정파간 타협을 이끌어 내는 설득력이다. 이를 저버리고 권좌의 오만에 빠져 권력의 키를 함부로 까불면 결국 그 권력은 날아가 버리고 만다.

▼힘만 믿고 까불면 알곡 날아가▼

이승만은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 풍상풍우 끝에 1948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해 냈지만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장면은 1960년 4·19혁명으로 탄생된 제2공화국 수반에 오르나 민주당 신구파 당쟁 분열이 사회 혼란을 초래하여 결국 다음해 5·16군사정변으로 스러졌다. 박정희의 제3공화국은 정통성 부재라는 짐을 지고 출발해 피와 땀과 눈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지만 1972년 유신의 반작용으로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이들의 애국심은 투철했는데도.

김영삼 문민정부는 전두환, 노태우를 12·12군사반란과 비자금 사건으로 감옥 보내고 군사정치문화 혁파, 금융실명제 실시 등 개혁을 단행했으나 아들의 국정농단과 비리로 불명예를 남겼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는 수억달러를 북한에 주면서도 일부 입금이 하루 늦었다고 김정일의 호통을 듣는, 저자세 햇볕정책으로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끌어냈으나 과연 얼마나 성공했는가. 신용카드를 남발해 400만 신용불량자를 양산했고, 각종 비리로 아들 3명과 권노갑 박지원 등 가신들을 법정에 세웠으니 그 또한 불명예를 벗지 못했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취임 초부터 최측근들이 비리로 감옥 간 데 이어 헌정 초유 탄핵사태까지 불러왔다. 급기야는 대선 전략으로 공약한 충청권 수도 이전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무산되면서 영호남 갈등구도에 충청까지 끌어들이게 됐다.

표를 의식해 지역이익을 부추기는 정치는 나라를 망친다. 정쟁은 멈춤이 없고 저질 막말이 판치고 있다. 나라 안 어디서도 희망의 조짐을 찾아볼 수 없다.

폐해도 그 반면(反面)에는 이로운 점이 있는 법, 그것을 생각지 않고 조급하게 개혁을 하려 하면 이로운 것까지 잃는다. 뭔가 한판 수를 보여주어야지, 뭔가 과감하게 해야지 하는 식으로 새 법안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해로운 것을 차근차근 제거해 나가는 정치가 바로 상생의 큰 정치이다. 지도자는 넉넉하게 생각을 키워가며, 농부가 쌀 한 톨 날아갈까 두려워 정성스레 키질하듯 신중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건전한 시대는 객관적이고, 혼란한 시대는 주관적이다.”

이는 지도자의 사고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나머지는 깽판 쳐도 괜찮다.’ ‘불공평한 역사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20대와 60, 70대 뇌세포는 전혀 다른 인격체다. (60, 70대는) 알아서 퇴장하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군사정권에 빌붙어 그 자리에 올랐다. 그대로 놔둘 수 없다.’ 여권 수뇌부의 어록이다.

▼지도자는 언제나 독단 경계해야▼

그러나 주관적·독단적 사고로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통치자는 스스로의 권한과 지위도 무시당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최고 권력자는 비판과 질타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객관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 정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능력이 부족하면 신뢰가 떨어지고 국정이 헝클어진다. 경륜이 없는 친북적 좌파 세대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인재를 찾아 삼고초려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라. 왜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권좌에 앉으면 대의를 저버리고 자만에 빠져 키를 마구 까불어 끝내 알곡을 모두 날려버리고야 말았는가. 국민은 쌀 한 톨 날릴까 봐 정성을 다해 키질을 하는데 말이다.

고정일 동서문화 발행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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