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뒤집어 읽는 역사이야기 55’

  • 입력 2004년 11월 19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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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읽는 역사이야기 55/진원숙 지음/471쪽 1만4000원 야스미디어

파스칼이 “만일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이래 역사적 가정은 역사학자들에겐 경원시됐다. 역사적 가정은 복잡하고 치열한 역사적 현실을 우연의 법칙에 지배받는 흥밋거리로 전락시킨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는 이러한 우려를 씻어내면서 역사적 가정 또한 역사를 곰곰이 반추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비명을 찾아서’는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기도가 실패했을 경우를 가정해 조선이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국가와 민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이에 힘입었을까. 계명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동서양과 한국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사건들에 과감히 가정법을 도입했다. 물론 그것은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곱씹어보기 위한 것이다.

유명한 파스칼의 가정부터 돌아가 보자. 파스칼의 논리는 클레오파트라의 미모가 떨어졌더라면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권력을 나눠가졌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의 누이 옥타비아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악티움 해전(기원전 31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눠가질 수 없는 법. 클레오파트라가 아니었어도 두 사람의 결전은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732년 이슬람제국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서유럽으로 진격해 들어가 프랑크왕국과 벌인 7일간의 투르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는 이슬람제국이 동유럽의 비잔틴제국을 무너뜨리고 발칸반도와 지중해를 장악한 비잔티움 함락전(1453년)과 비교할 수 있다. 발칸반도는 이후 종교와 인종이 복잡해지면서 ‘세계의 화약고’로 바뀌었다. 투르 전투에서 프랑크왕국이 패배했다면 오늘 서구 기독교 문명은 그 정체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 발트함대가 1905년 대한-쓰시마해협에서 일본함대를 꺾었다면?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완충국이 됐던 태국처럼 독립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스탈린이 국민적 영웅이 됐던 것처럼 러시아 황실도 강력한 권위로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고, 볼셰비키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수많은 연쇄작용으로 이뤄지는 거대한 구조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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