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6년 ‘김일성 사망’ 해프닝

  • 입력 2004년 11월 16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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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는 16일 전방지역에서 대남 확성기 방송을 통해 김일성(金日成)이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방송을 실시했다.”

1986년 11월 17일 오전 이흥식(李興植) 국방부 대변인은 이렇게 발표했다.

이전에도 김일성 주석 사망설은 종종 흘러나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대남 확성기에서 김 주석의 사망 뉴스가 나오다니….

‘만세!’

이날 이북5도청의 이북도지사 정례회의에서는 만세삼창이 터져 나왔다. 1983년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사건의 비극적 잔상이 생생하던 당시, 꼭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김 주석의 죽음은 희소식이었다.

바로 다음날인 18일 ‘김일성 사망’은 희대의 해프닝으로 드러났다. 김 주석이 몽골 국가원수의 영접을 위해 평양공항에 모습을 나타낸 것.

야당은 즉각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첩보를 기정사실화해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이유였다.

19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노신영(盧信永) 국무총리는 야당 의원들의 대국민 사과 요구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국민들이 북괴의 (김일성 사망이라는) 대남방송이 사실이기를 기대했다가 결국 실망한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남방송에 김 주석 피살 소식이 나온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북한 내부에서 뭔가 심각한 일이 있었다는 추측만 가능할 뿐.

당시 동아일보 11월 18일자 ‘횡설수설’. “애당초 김일성 피살 소식을 전해준 건 휴전선 북쪽 울타리 안의 나팔(확성기)이었다. 왜 평양과 휴전선의 나팔은 입이 맞지 않는가. 아무래도 독재의 황혼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황혼’은 꽤 멀리 있었다. 김 주석은 8년을 더 산 뒤 94년 7월 8일 오전 2시에 진짜 사망했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17일 앞둔 때였다.

다음날인 7월 9일 김 대통령은 김 주석 사망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보름 후면 남북 정상이 함께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의논하게 돼 있었는데 대단히 아쉽게 생각한다.” 8년 사이 김일성 죽음에 대한 정부 반응은 이렇게 달라졌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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