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낙인’이 일상화된 세상

  • 입력 2004년 11월 14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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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신문법안이 논란을 빚으면서 기자는 관련 토론회와 TV 대담에 몇 차례 나선 적이 있다. 토론회 주최측은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동아일보 기자의 말을 듣고 싶어 했고, 기자도 문제점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에서 참석했다.

그런데 토론회 이후 기자와 다른 견해를 가진 언론운동진영 등에서 나오는 뒷이야기가 한결같다.

“사주의 대변인 같다.” “사주의 권리를 보호하려 한다.”

사주를 만날 이유도 없고, 그럴 기회도 없는 기자에게는 대단한 모욕이다. 그럴 때마다 내 발언을 복기해 보지만 그 비난을 납득하기 어렵다.

기자는 법안의 문제점으로 신문과 태생적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개입할 소지가 많고, 외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규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더구나 법안의 명분으로 내세운 여론 다양성 확보에 반대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기자의 발언에 사주와 관련한 ‘레테르’를 붙이는 이유는 뭘까. 대학 교수인 한 친구는 기자의 고민을 듣더니 “그런 낙인(烙印)은 편리한 비난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낙인은 발언의 취지를 단숨에 왜곡한다는 점에서 편리한 듯하다. 특히 낙인이 개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치 사회 단체나 언론사를 비난하는 데로 옮아가면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편 가르기의 도구가 된다. 정치인들의 투론(鬪論)에 가까운 TV 토론이나 국회의 이전투구에서 보듯, 정교한 논리보다 한마디의 낙인이 훨씬 더 선동적이다.

집권층과 언론운동진영의 특정 신문에 대한 ‘낙인찍기’는 거의 일상화되어 있다. ‘족벌언론’ 등에 이어 최근 이해찬 총리는 동아일보에 대해 ‘역사에 반역했다’는 낙인을 찍었다. 그는 동아일보의 이마에 ‘사상의 주홍글씨’를 새기려 했던 것일까.

충청 지역의 언론운동진영도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 어느새 동아와 조선일보에 대해 ‘수도권 이기주의의 첨병’ ‘위헌 결정의 배후’라고 낙인찍었다. 청와대부터 수도 이전 논란을 두 신문 탓이라고 몰아붙인 결과다.

그러나 낙인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다.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이었던 선판(沈凡)이 쓴 책 ‘홍위병(Gang of One)’은 당시 10대들이 ‘봉건 잔재’라는 낙인 아래 산더미 같은 책을 ‘감동적으로’ 불살랐음을 증언하고 있다. 독일의 나치 치하 ‘다비드의 별’은 유대인에게 죽음의 낙인이었고,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반동’이나 ‘빨갱이’라는 낙인은 영혼과 육체에 대한 사형선고였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신문 칼럼에서 “하나의 원리 또는 범할 수 없는 몇 개의 개념으로 만사를 풀어내는 이데올로기가 사고의 밀도를 낮추며, 밀도 있는 사고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와 문화 없이는 현명한 사회적 선택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낮은 밀도의 사고가 가져올 불행을 지적한 김 교수의 사유에 범접할 순 없으나 그의 말은 기자의 눈과 귀를 잡아당겼다. 단순한 사고와 독선에서 비롯되는 낙인이 일상화된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요즘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아무 때나 불도장을 찍어 대는 이들이다. 그 낙인이야말로 그들의 사고(思考)의 수준을 말해 주는 게 아닐까.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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