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재미의 경계’…재미있는 얘기의 ‘3가지 비밀’

  • 입력 2004년 11월 12일 16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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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과 긴장의 축적, 반전은 유머와 소설, 영화 등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결말 부분의 반전이 효과적으로 처리된 사례로 꼽히는 영화 ‘식스 센스’. 동아일보 자료사진
복선과 긴장의 축적, 반전은 유머와 소설, 영화 등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결말 부분의 반전이 효과적으로 처리된 사례로 꼽히는 영화 ‘식스 센스’. 동아일보 자료사진
◇재미의 경계/이현비 지음/351쪽 1만3000원 지성사

예1) 손오공이 요괴들을 만났다. 머리털을 뽑아 훅 불자 털들은 각각 손오공의 분신이 되어 싸우기 시작했다. 얼핏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 아닌가. 고마워 성함을 묻자 “저는 새치인데요.”

예2) 길에서 두 여고생이 싸우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상대방의 배를 멋지게 걷어찼다. 차인 여학생의 말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순간 자지러졌다. “어쭈구리… 이 ×이 내 똥배를 넣어 주네!”

예3) 미모의 여학생이 미팅에 나갔다. 상대는 못생긴 데다 매너도 ‘꽝’이었고 자기 자랑만 늘어놓았다. 여학생은 남자 입에 담배를 물리고 불을 붙여 주었다. 어떤 뜻이었을까? ‘터져라, 폭탄아!’

위의 이야기들이 재미있는가? 재미있다면 이 이야기들에서 ‘재미’를 만들어 내는 요인은 무엇인가? 웃기는 쉽지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책의 부제 그대로 저자는 이 책에서 ‘재미에 관한 일반이론’을 수립하려 시도한다.

저자에 의하면 재미를 산출하는 핵심 요인은 세 가지.

첫 번째 요인은 ‘다중구조와 복선’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숨은’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때 재미의 첫 번째 요인이 생성된다. 예1)에서 ‘드러난’ 이야기는 ‘정의를 위해 싸우면 돕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고, 숨은 이야기는 ‘흰 털은 늙음을 나타낸다’이다.

재미의 두 번째 요인은 ‘긴장의 축적과 반전’이다. 예2)에서 배를 걷어차인 여학생의 곤란한 상황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여학생들은 몸매에 고민이 많다’는 숨겨진 이야기가 튀어나오면서 순식간에 긴장이 해소된다.

재미의 세 번째 요인은 ‘공유 경험’. 매력이 없는 미팅 상대를 ‘폭탄’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모르면 예3)에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머리 나쁜 금발’에 대한 농담을 듣고 우리가 선뜻 웃기 힘든 것도 ‘공유 경험’의 부족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이 합쳐질 때 ‘재미’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로 ‘우스개’를 예로 든 것은 짧은 길이 속에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 훨씬 규모가 큰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도 다중구조와 복선, 긴장의 축적과 반전, 공유경험이라는 ‘재미의 요인’들은 그대로 맞아 들어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재미는 그냥 그대로 즐기면 되지 왜 분석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답도 분명하다. “문화산업의 중심에 바로 재미의 추구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재미를 만들어 내는지 확실히 분석할 수 있을 때 한국 문화산업은 계속 성장할 수 있으며, ‘순진한 생각으로 투자금을 날리는 일도 줄일 수 있다’는 제안이다.

해외의 ‘재미 이론’으로 알려진 파울로스의 파국이론, 스펜서의 이론 등을 검토하면서 각각의 논리가 가진 장점과 허점을 점검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4장에서 저자는 ‘표면적인 논리를 따라 본질을 호도하는 부분이 발견될 때 웃음이 생성된다’는 ‘부조리 이론’ 개념을 비판한다. 그러나 ‘부조리 이론’을 저자의 ‘다중구조와 복선’ 이론과 상호보완적으로 결합시킬 때 오히려 더욱 정밀한 이론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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