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어이없는 ‘왜곡보도’ 시비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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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에 ‘동아일보, 자사에 불리한 여론조사 은폐’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 것을 보고 기자는 경악했다. 그 여론조사 기사를 작성한 사람이 바로 기자였기 때문이다.

이어 10일 열린우리당 김현미(金賢美) 대변인이 인터넷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동아일보가 왜곡보도를 했다”고 발표했을 때는 “사실을 이렇게 왜곡할 수 있나”하는 생각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느꼈다.

김 대변인과 일부 인터넷 언론 보도의 지적처럼 본보 8일자 A1·4면에 실린 여론조사 기사에는 실제 조사한 19개 항목 가운데 4대 법안에 대한 조사결과와 각 정당의 지지율 등 6개 항목은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를 작성한 기자로서 단언컨대 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고려’도, ‘위로부터의 압력’도 없었다.

김 대변인 주장대로 본보가 여당에 불리한 내용만 보도하려 했다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많았다는 사실은 보도했을 것이다. 또 ‘현 정부를 좌파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등 여권에 유리한 내용은 보도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들 항목이 누락된 이유는 바로 신문의 제한된 지면 때문이다. 방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제한된 지면에 소개하기 위해서는 취사선택을 거칠 수밖에 없고 그 취사선택 과정, 즉 편집권은 신문사가 갖고 있는 고유권한이다. 더구나 보도된 것도 아니고, 보도되지 않는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더 심각한 점은 여당측의 문제제기 방식이 음험한 ‘기획’의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여당측은 여론조사기관인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요청해 본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그러나 이를 직접 발표하지 않고, 인터넷 언론에 넘겨 ‘터뜨린’ 뒤 다음날 인터넷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본보를 공격하는, 이른바 ‘짜고 치는’ 수법을 택했다.

과거 공작정치가 횡행하던 시절에 많이 보던 수법 그대로다. 여당은 보도되지도 않은 내용을 갖고 일방적으로 떠들기보다는, 어느새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수구 꼴통’ 정권과 닮아가고 있음을 자성해야 할 듯하다.

최호원 정치부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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