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2년 무솔리니 로마입성

  • 입력 2004년 10월 29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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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정권을 내주지 않으면 로마로 진군해서 얻어내겠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당 당수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 밀라노에서 세력을 얻은 그는 4만여명의 무장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향했다. 1922년 10월 30일 드디어 무솔리니는 로마에 입성했다.

군중은 숨죽이고 무솔리니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대결을 지켜봤다. 그러나 기싸움은 너무 싱겁게 끝났다. 내전 발발을 두려워 한 국왕은 즉각 무솔리니를 총리로 임명하고 조각 위촉 문서를 내줬다. 무솔리니는 그렇게 간단하게 무혈쿠데타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이때부터 1945년 무솔리니가 죽기까지 이탈리아는 거대한 파시즘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정권을 잡은 무솔리니는 선언했다. “모든 것은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 아무것도 국가에 반대할 수 없다.”

파시스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은 불법화됐으며 법률을 만들 수 있는 권리까지 무솔리니가 독차지했다. 제국에 대한 환상은 아프리카 침공으로 이어졌고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탈리아 국민은 기꺼이 파시즘의 광기에 동참했다. 유럽 최고 문명국가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니, 그 자부심 때문에 군중은 무솔리니에 열광했다.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프랑스에 밀려 전리품 배분에서 철저히 푸대접을 받았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인플레가 만연하고 파업사태가 속출하면서 민족적 자존심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의 현란한 대중선동술은 이탈리아의 상실감과 허무감을 달래줬다. 아돌프 히틀러조차 “대중심리를 꿰뚫는 능력에서 무솔리니는 나보다 한수 위”라고 인정했다. 무솔리니가 반(反)파시스트 세력에 의해 최후를 맞기까지 파시즘은 독일 나치즘, 일본 군국주의 등 전체주의의 기반이 돼 20세기 중반 세계를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지게 했다.

무솔리니는 아마 자신을 고대 로마제국의 카이사르와 같은 영웅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했던 카이사르처럼 자신도 로마를 점령해 권력을 얻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성이 결여된 권력의 종말은 혹독했다. 20세기 역사도 그만큼 뒷걸음질쳤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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