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정희 胸像’

  • 입력 2004년 8월 30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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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5·16이 군사쿠데타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행위를 했음을 엿볼 수 있다 해도 현재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나눠져 있다.” 2년 전 서울지법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胸像)을 철거한 혐의로 기소된 이들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며 덧붙인 설명이다. 흉상 철거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은 뒤 정당한 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기준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므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및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돼 정당성이 없다는 판결이었다. 이들에게는 2003년 초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들 중 한 사람이 근무하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는 직원이 징역형을 받을 경우 당연면직된다는 규정이 있다. 감사원 지적에 따라 직원을 면직 처리했던 기념사업회는 올 초 인사규정을 고쳤다고 한다. ‘임용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자라도 그 사유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발생했다고 인정될 경우 임용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그는 복직됐다. 흉상 철거과정에서의 행동을 포함해 198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것이 인정됐다는 것이 기념사업회측의 설명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지만 유신독재까지 옹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은 분명 민주화운동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흉상을 철거한 것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최종 판결했다. 흉상을 철거한 이들은 그 행위가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그릇 인식하고 있는데 그 인식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기념사업회 주장대로 흉상 철거가 민주화운동이라고 치자. 그러나 임용 결격사유가 있어도 민주화운동은 예외라는 조항을 새로 만들어서까지 복직시킨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4·19혁명, 6·10항쟁 등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하고 사업회가 관계되는 모든 일을 민주화운동으로 간주한다면 문제다.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믿으면 법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오만과 독선으로 비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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