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종교는 진화…’ 사회가 있는한 종교는 살아있다

  • 입력 2004년 8월 27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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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진화한다-진화론과 종교, 그리고 사회의 본성/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 이철우 옮김/432쪽 2만원 아카넷

과학이 종교를 남김없이 설명해 낼 수 있을까? 근대과학이 태동한 후 한동안 많은 이들은 그럴 것이라 여겼다. 심지어 그들은 과학이 종교라는 망상을 몰아내길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세기 동안 오히려 이런 기대야말로 망상임이 확인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종교는 인류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건재하다.

하지만 종교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까지 무너진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 수십 년 간 신다윈주의 생물학과 심리학, 그리고 인지과학은 이런 기대를 증폭시켰다. 종교는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유전자의 자연선택에 따른 산물이라거나, 문화적 유전자인 모방자의 산물이라는 등 다양한 설명이 제시되었다. 지금은 가히 종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백가쟁명 시대다.

여기서 미국 빙햄턴대의 생물학 및 인류학 교수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그만의 독특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의 해답은 집단선택이다. 집단은 유기체이며, 응집력 강한 집단은 적응력이 뛰어나 생존가능성이 높으며 이로써 스스로 존속해 간다는 것이다.

수행 중인 티베트 불교 스님들. 저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종교는 헌신 협력 자기희생을 통해 집단의 응집력을 높임으로써 집단의 존속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 책은 윌슨이 자신의 집단선택 이론을 종교라는 사회·문화 현상에 적용한 역작이다. 그는 종교가 헌신, 협력, 자기희생을 통해 집단의 응집력을 높임으로써 집단의 존속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를 입증한다.

첫 번째 사례는 소규모 사회들이다. 그는 인류학을 함께 가르치는 사람답게 다양한 인류학적 연구결과를 끌어온다. 예를 들어 그는 통과의례가 자아내는 집단 응집력을 특징지은 빅터 터너의 코뮤니타스 개념을 토대로 자기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이어서 그는 칼뱅주의를 흥미롭게 분석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 이후 칼뱅주의의 성공요인은 예정설이나 근검정신에 있다고 여겨졌지만, 윌슨은 이와 달리 그 요인이 협력과 규율을 강조하는 칼뱅주의의 엄격한 공동체 윤리에 있다고 본다.

또한 윌슨은 역사와 현재 속의 숱한 사례를 제시하는데, 그중에는 미국 한인교회에 대한 분석도 있다. 한인사회에서 교회는 협력을 강화하고 이탈을 방지함으로써 이민공동체를 결속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방대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들로 서술되었기에 책을 읽는 일이 즐겁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종교가 인간 사회를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여 왔고, 종교의 그런 힘이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의 본성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보니 윌슨에게 그리 새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 종교와 사회가 유기체이며 종교가 사회를 통합한다는 논제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진화생물학에 집단선택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사회과학과 결합하는 시도만큼은 독창적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도 종교를 신성불가침의 것으로만 여겨서 믿음 이외의 모든 설명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종교를 한낱 구시대의 유물쯤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런 편견을 바로잡아 주는 힘을 갖고 있다. 원제는 Darwin's Cathedral: Evolution, Religion, and the Nature of Society(2002년).

김윤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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