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0년 미국 여성참정권 부여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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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議政) 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

프랑스혁명의 와중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여성 연극인 올랭프 드 구주. ‘여성인권선언’을 작성한 그는 “자신의 성별(性別)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비난받았다.

시민혁명과 공화정의 나라 프랑스에서 여성이 선거권을 얻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진 지 155년 만이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단지 ‘남성권’의 선언이었고, ‘박애(博愛)’의 이념은 자매를 제외한 형제애였던가.

정치(政治)는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에겐 문턱이 높았다.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여성참정권의 역사는 겨우 100년을 헤아린다. 스위스 여성들은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1971년까지 기다렸다.

여성의 한 표는 거저 쥐어지지 않았다. ‘피의 투쟁’을 거쳤다. 어쩌면 인종과 신분의 벽보다 더 험하고 거친 차별의 강을 건너야 했다.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을 규정한 연방수정헌법 19조가 통과된 것은 1920년. 뉴욕주 세니커폴스에서 세계 최초의 여권(女權)집회가 열린 지 72년 만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의회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던 영국에서도 민주주의는 오랜 기간 ‘남성들의 잔치’였다.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결성한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운동은 과격했다. 우체통에 불을 지르고 공공건물의 유리창을 깨부수는가 하면 보수 정치인을 습격했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여성들은 ‘전시노동’에 동원됐고 그 보상(?)으로 가까스로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일부 아랍국가에선 지금도 정치는 금녀(禁女)의 땅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월경이 정치적 판단을 흐릴 수 있다”며 여성을 배척하고 있다 하니.

영국의회 사상 최초의 여성의원인 애스터는 말했다. “최고의 남성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최선의 정책이 승리할 뿐이다!”

그러나 ‘최선의 정책’이 ‘최고의 여성’일 땐 망설인다.

가톨릭교회도 여전히 여성을 성직(聖職)에서 배제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성(性)을 가진 사람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보다 더 평등하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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