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전작가의 풍모와 문학’…임제-김인후

  • 입력 2004년 8월 6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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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작가의 풍모와 문학/김진영 지음/경희대출판국 2만2000원 530쪽

“천하의 여러 나라가 제왕을 일컫지 않은 나라가 없었는데 오직 우리나라만은 끝내 제왕을 일컫지 못했으니 이같이 못난 나라에 태어났다 죽는 것을 애석히 여길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백호 임제(白湖 林悌·1549∼1587)가 불혹에도 못 미친 서른여덟에 숨을 거두며 남긴 유언이다. 중국에 대한 사대가 극에 이르렀던 조선시대 유자(儒者)로서 이런 발언을 남겼으니 그 호방함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여행을 다닐 때 항시 칼과 거문고를 지니고 다녔다는 이 사내는 조선 최고의 풍류 남아였다. 평안도 도사로 부임하는 길에 여보란 듯 기생 황진이의 묘소를 찾아 생전에 만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라는 시조를 짓는가 하면, 명기 한우(寒雨)의 이름을 빗대어 ‘오늘은 찬비를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는 멋들어진 유혹의 시조를 남겼다.

반면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는 동국 제일의 풍채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평생 도학자의 생을 살았다. 하서의 시 세계는 윤리적 삶의 실천과 현실에 대한 비판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그 호방함에 있어서는 백호에 못지않았다.

그는 ‘천마가(天馬歌)’라는 시에서 ‘혼자서 훨훨 날아 팔황(八荒)을 둘러보니/바로 한번 뛰어넘어 막바지를 달리고자/동쪽 부상(扶桑) 서쪽 약목(若木) 두루두루 구경하고/남명(南溟)이라 북극(北極)이라 두 눈을 또 돌리어/천년만년 시름일랑 모조리 씻어내니’라고 우주적 공간을 한 호흡에 읊었다. 또 ‘고검가(古劍歌)’에선 ‘기운은 별을 찔러 높은 하늘 꿰뚫으니/하늘도 기가 질려 감히 보질 못하는 걸/원한 엉겨 만 길의 무지개로 변해지니/우주에 두루 퍼져 가로세로 엉키어라’라고 대륙적이고 북방적인 상상력을 펼친다.

이 책은 이처럼 신라시대 최치원부터 고려의 귀족문인 이인로와 이규보, 그리고 조선의 고승 서산대사와 명기 황진이에 이르기까지 15명 문인들의 삶과 문학세계를 조명한 글들을 모았다. 경희대 국문과 교수인 저자가 주로 한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문학세계를 그 인간적 풍모와 연계해서 풀어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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