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日조사범위 확대 논란]조사대상 확대 ‘정략’ 깔렸나

  • 입력 2004년 7월 13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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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13일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키로 함에 따라 국회의 법안 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개정안은 올 4월 20개 단체로 구성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시민연대’(공동대표 강만길 함세웅 최병모)가 마련한 초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115명을 비롯해 13일 현재 132명이 서명했다.

▽조사 대상 확대와 정치적 의도 논란=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것은 조사 대상 확대에 정치적 목적이 개재돼 있느냐 여부. 한나라당은 특히 개정안에 군수, 경시(총경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소위급 장교 이상을 포함시킨 것은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 친일행위자 규정에 ‘문화 예술 언론 학술 교육 종교’ 등의 분야를 적시한 것도 당시 존재했던 일부 신문을 겨냥한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은 “개정안은 박근혜 전 대표와 비판적 언론을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전 보도 허용 따른 여론재판 논란=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위원회의 조사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 국회 일각에선 형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 공표 금지’ 조항을 들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개정안에 따르면 언론을 통한 위원회의 조사내용 공개 시점이 불명확해 최종 친일행위로 확정되기 전에도 언론을 통해 조사 내용이 흘러나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대상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일부 언론이 특정 시각과 목적에 따라 ‘마녀사냥’ 하듯 ‘친일 혐의자’들을 재단(裁斷)할 경우 사회 분열, 나아가 국론 분열까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의 진상규명위원 추천권 삭제=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위원에 대한 국회 추천권을 배제한 것도 여야간 치열한 논란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기존 법에는 진상규명위원들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토록 돼있었으나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 ‘정치권의 입김 배제’를 명분으로 내세워 국회추천권의 삭제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국회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한 채 특정 시각과 역사관을 가진 인사들만으로 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조사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국회추천권 부활을 강력히 요구할 방침이다.

▽조사 심의 절차 강화=개정안은 시비 소지를 줄이기 위해 조사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조항도 일부 추가했다. 진상조사 절차 이후 의결에 앞서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심사위원회의 심의 단계를 신설했다. 또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의결정족수를 현행 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에서 3분의 2 이상으로 강화하고 친일 전력이 있더라도 반일 공적이 뚜렷한 사람은 위원회 전원의결을 거쳐 구제토록 했다. 이와 함께 위원회의 소환에 불응하는 조사대상자에게 위원장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고 관계 부처와 해외공관의 협력 규정 위반 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 반응=관련 학자들도 개정안 중 △심의 과정 중인 내용의 공개 △대통령의 심의위원 임명 △조사기간 연장 등에 우려를 표명했다.

신용하(愼鏞廈·사회학) 한양대 석좌교수는 “1948년 반민특위 특별법의 조사기간도 2년이었다”며 “개정안의 조사 기간 5년은 너무 길고 원안대로 3년이 적당하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또 “48년 특별법은 문화 예술 언론 교육 학술 종교 부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일본 군국주의의 무력 강요에 의한 것으로 판단해 관대하게 처리했는데 이번 개정안은 이 부문을 굉장히 중시했다”며 “이는 당시 지식인의 처지에 비춰볼 때 너무 가혹한 것이므로 48년 특별법의 원칙을 존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윤재(鄭允在·정치학)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사전공표금지 조항과 국회 동의 조항을 삭제한 것은 잘못”이라며 “치밀하게 조사해 내실과 합리성을 기하지 못한 채 과거 이승만 정권 때처럼 ‘여론재판’식이 된다면 이 법안의 시행 자체가 유야무야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박근혜 前대표 “野-일부언론에 보복 시작”▼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는 13일 열린우리당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 개정안 제출 방침에 대해 “(법안을) 통과시킨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그렇게 고쳐서…”라며 “상생(相生)이란 것이 일방적인 걸로 되느냐. 야당탄압이다”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경기 수원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한 뒤 “무슨 액세서리처럼 (정책을) 해놓고 상대방 흠집내기를 한다.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정치 보복의 시작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은 시행도 안하고 (개정안을) 올리고 있으면서 국회 예결특위의 상임위화는 계속 반대하고 있다”면서 “열린우리당은 개혁의 ‘개’자도 꺼낼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 법안의 국회통과 가능성에 대해선 “여당이 속이 보이는 뻔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다”며 “국민은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며 (개정안 논의도) 의원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열린우리당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 현행법-개정안 비교
주요내용현행(16대 통과 법안)개정안
조사대상 확대중좌 이상 장교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자, 고등문관 이상 관리, 헌병분대장 이상, 경찰간부고등관(문관은 군수, 경찰은 경사, 군은 소위) 이상은 당연 대상, 그 이하는 반민족행위가 현저한 경우
친일행위 정의 확대학병 지원병 징병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 선동 강요한 행위, ‘중앙’의 문화기관 단체에서 황민화운동에 적극 협력한자문화 예술 언론 교육 학술 종교 등 사회 각 부문에서 황민화운동을 비롯해 식민통치 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위원회 기능 강화조사기간 3년, 위원장 등 비상임조사기간 5년, 위원장 상임위원 2인 등 3명의 정무직은 상임
국회 추천권 삭제국회 동의 거쳐 대통령이 임명국회 동의 조항 없앰
심의위원회 신설없음심의위원회를 두어 그 심사를 거친 뒤 의결토록
공표금지 조항 삭제신문 방송 출판물 통한 사전공표 금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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