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학교급식에 외국산은 안된다?

  • 입력 2004년 6월 1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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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경북 구미지역 시민단체들은 주민 1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조례 제정을 자치단체에 청구했다.

학교급식에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학교에는 지자체가 재정 지원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구미시는 현재 이 문제를 놓고 고심 중이다.

최근 들어 인천 경기 충남 경북 경남 전남 제주 등의 지방의회들이 학교급식에 ‘국내산 우수 농수축산물’을 사용토록 하는 조례를 잇달아 제정하고 있다.

한 지역에서는 조례에 ‘우리 지역에서 나온 농수산물’만을 사용하도록 했다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일자 국산 농산물로 바꾸기도 했다. 몇몇 지역교육청은 이 조례가 국내법과 동일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수입 농산물 차별 금지’ 조항에 어긋난다며 대법원에 무효소송을 냈다.

초중고교의 급식(주로 점심) 재료로 안전한 농수축산물을 사용해 학생들의 건강을 챙기고 농업도 보호하자는 조례의 취지에 반대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례가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학생들에게 ‘국산=안전하고 우수한 농산물’, ‘수입품=싸구려 불량 농산물’식의 획일적인 가치관을 심어 준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급식이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관계당국은 아직도 국산 농산물이 외국 농산물보다 정말 우수한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산의 개념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음식의 주재료가 국산이어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양념 등 보조 재료까지 모두 국산이어야 된다는 것인지 급식 종사자들도 잘 모른다.

얼마 전 인천에서는 중국산 배추와 고춧가루로 국내에서 김치를 만들었다면 ‘국산’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자치단체들도 걱정한다. 외국 농산물을 배척하면서 어떻게 우리 고장에서 나는 과일이나 야채류를 외국에 수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우수한 농산물로 청소년들에게 균형식을 먹게 하더라도 “우리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수입품은 나쁜 것”이라는 가치관을 갖게 한다면 정신적으로 ‘가치관의 편식(偏食)’을 심어 주는 게 아닐까.

이권효 사회2부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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