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한강 投身

  • 입력 2004년 6월 14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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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자살자의 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339번째 자살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사복을 입은 순찰대원이 증원되고 높은 난간이 설치됐다. 영국의 런던탑,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1937년 건설된 이래 자살자가 500명을 넘어서자 다리 주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찰이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장소로 에펠탑처럼 유명한 건축물이나 명소를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에펠탑에서 투신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곳에서 일어난 자살사건이 보도된 신문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자살을 연극적 행위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관객 또는 뉴스의 시청자를 향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의 책임은 당신들에게도 있다”고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한 연극배우는 관객이 없으면 죽기도 곤란하다고 말했다던가.

▷한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전 건설업체 사장, 도지사, 시장, 이번에는 불량만두소를 만들어 판 30대 식품업체 사장…. 경찰이 순찰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얼마나 예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일련의 한강 투신을 일본 사무라이의 할복문화와 비슷한 유형으로 풀이하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싸움에 진 사무라이들은 적이 자신을 유린하고 모욕할 가능성을 봉쇄함으로써 스스로 명예를 지킨다고 생각했다. 치욕을 당하느니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최근의 여러 자살자들은 왜 한강을 선택했고 사람들을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자살의 역사에 관해 기술한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투신 자살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람보다 장소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사회적 불명예를 감내하기 어려웠던 것인지, 죽은 자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 사회가 투명한 사회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비극이라는 점만은 분명할 듯싶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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