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콜럼버스 항해록’…“황금을 긁어 모아라”

  • 입력 2004년 6월 11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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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채색벽화 ‘에스파냐인들이 도착하기 전과 그 후의 아메리카 역사’ 중 일부. ②3차 항해 도중 체포돼 압송당하는 콜럼버스를 그린 삽화.③콜럼버스가 직접 그린 서인도제도 상륙 장면. 벌거벗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겁에 질려 황금을 바치는 모습이다.사진제공 서해문집
①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채색벽화 ‘에스파냐인들이 도착하기 전과 그 후의 아메리카 역사’ 중 일부. ②3차 항해 도중 체포돼 압송당하는 콜럼버스를 그린 삽화.③콜럼버스가 직접 그린 서인도제도 상륙 장면. 벌거벗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겁에 질려 황금을 바치는 모습이다.사진제공 서해문집

◇콜럼버스 항해록/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지음 이종훈 옮김/264쪽 1만1900원 서해문집

“저는 두 분 폐하께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이들처럼 선량한 사람은 없고, 이곳처럼 좋은 땅도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온순하고 상냥하게 말합니다. 남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벌거벗고 돌아다닙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비난할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사물을 잘 기억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열심히 배우려고 합니다. 그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에 대해 물으며,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기 좋아합니다.”

1492년 인도대륙을 찾아 대서양을 횡단했다가 서인도제도에 도달한 콜럼버스. 그가 항해일지(1492년 8월 3일∼1493년 3월 15일)에 묘사한 아메리카 원주민은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다. 그들은 모두 ‘얼짱’에 배불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짱’이다. 콜럼버스 탐험대의 배 3척 중 본선이었던 산타마리아호가 좌초하자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고도 모자라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위로하는 ‘맘짱’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는 곳은 에덴동산이 따로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된다.

“두 분 폐하, 이 땅의 아름다움은 너무나 대단합니다. 이 아름다움을 두 분 폐하께 설명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진실을 말로 하기에는 제 혀가 너무 짧고, 기록하기에는 제 손이 모자랍니다.”

콜럼버스의 항해를 이끈 나침반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었다면 그 배의 팽팽한 돛은 황금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런 이율배반성은 그처럼 아름다운 경치와 사람들을 만난 콜럼버스의 반응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60여일의 지루한 항해 끝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첫 대면한 그의 반응은 “영리하고 훌륭한 노예로 적격”이라는 것이었다. 또 그의 입은 계속해서 서인도제도의 아름다움을 떠들어대지만 두 눈은 황금의 섬 ‘지팡고’가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황금이 없으면 진주, 그것도 없으면 후추와 육두구 같은 향신료를 집요하게 찾았다.

항해록에는 인간 콜럼버스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대서양을 건너는 두 달여의 항해기간 내내 선원들에게 실제 항해거리를 계속 줄여서 말한다. 선원들의 불안과 동요를 막기 위한 심리전이기도 했지만 실제 항로를 자신만이 알고 있으려는 연막작전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선단 중 1척이 황금에 눈이 멀어 선단을 이탈했다가 돌아오자 복수의 칼을 갈면서도 짐짓 아량을 베풀어 용서하는 척 연기를 펼친다.

고전작품에 재미있는 정보성 안내를 곁들인 ‘서해클래식’ 시리즈의 첫 권인 이 책은 아메리카가 어떻게 ‘발견’됐는지는 물론 기독교 복음주의와 결부된 서구식민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생생히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고전에 대한 주석을 딱딱한 글이 아니라 페이지마다 풍성한 컬러도판의 그림과 지도, 사진으로 대체한 편집의 공이기도 하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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